응급실과 주치의

사는 얘기 2009.09.17 18:44


나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물론 치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제외) 약국도 가지 않는다.
감기몸살에 걸리면 그냥 아파한다. 폐인이 될 때까지.
배탈이 나면 굶는다. 그러다 좀 나아지면 이온음료와 고구마를 먹는다.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게 되면 주사를 사양/거부하고 약만 처방받는다.
시간 맞춰 약 챙겨 먹는 것도 적성에 안 맞아 그마저도 신통찮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내가 응급실에 간 적이 있다.
헐~ 나와 응급실은 정말이지 안 어울린다.
길 가다 주체못할 오지랖에 누굴 데리고 가는 건 몰라도 말이다.
사실 그때도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간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고향집에 내려갔다가 과식을 했는지, 폭식을 했는지
암튼 장운동이 멈춰서 혼비백산 한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장이 멈췄다.
(원래 인풋과 아웃풋이 꽤 원활한 편인데.. -.-)

배는 너무 아프고 얼굴은 새하얗고 식은땀에 온몸이 굳어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할머니가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걸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날 업을 수 없으니까 -.-) 119에 신고를 했는데,
왠걸 통화중. 통화대기도 아니고 그냥 통화중.
좀 있다보니 기어갈 순 있을 것 같아서 겨우겨우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갔다.

의사는 몇 가질 묻고 배를 만져보더니 링거를 놔주었다.
'아놔- 결국 이렇게 돼버렸어. 응급실 와도 별 거 없을 거란 거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만 덜 아팠으면 참고 낼 단골병원에 가는 건데.
주치의쌤이 링거는 이온음료 따끈하게 데워먹는 거랑 똑같다 그랬는데. 엉엉..'

좀 살만해졌는지 요런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때 의사가 다시 나타나 하는 말,
'초음파 해보는 게 어떨지. 간혹 자궁 때문일 수도 있삼. 콜?'
맘 약한 할머니는 해보자고 했지만 나는 쿨하게 사양/거부했다.
그랬더니 의사는 쏘 쿨,
'알았삼.'
추측컨대 그건 의사들의 가이드라인이었다. 혹시 생길지 모를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혹시나 내가 자궁문제로 다시 실려오면, '자궁초음파'를 권했냐 안했냐가 그 양반의 운명을 결정할테니 말이다.
의사도 잘 한 거고, 나도 잘 한거다. 라고 생각한다.

나는 주치의라는 표현을 간혹 쓰는데 그러면 사람들은 피식 웃는다. 무슨 재벌집 자식이냐며.. ㅎㅎ
그럼 나는, '주치의가 별거냐? 오랫동안 치료받아서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의사가 주치의야'라고 쿨하게 받아친다.
의료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력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가 바로 주치의제도의 확립이다.
주치의'제도'라고 해서 뭐 일 대 다로 짝지어줘서 법적으로 구속하는 게 아니라,
주치의라는 개념과 관계를 생활 속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주치의제도는 단순히 친근감을 확보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게 해소되면 자연히 친근감이 쌓이고 문턱이 낮아진다.)
물론 그 비대칭성이 완전히 해소될 수는 없을 것이다. 치료하다말고 생물 수업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환자가 던진 질문에는 어느 때보다도 성실히 답해야 한다.

대학 때 두어 번 가 본 내과가 있는데 그분은 정말 좋은 의사였다.
성격이 서글서글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질문에는 굉장히 성실히 임했다.
그리고 주사를 처방하지 않았다. 거기다 사소한 거긴 하지만 나의 예전 진료기록을 언급한 적도 있었다.
정말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주치의로 '모셨을' ^-^ 선생님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고, 성실히 응답하고, 최선을 다해 진료하는 의사.
개업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이것이 수련과정 때부터 강조된다면,
그래서 주치의를 자임하며 주치의답게 실천하는 의사가 많아진다면,
동네병원을 가든 종합병원을 가든 응급실을 가든 별로 걱정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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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왜 트랙백 정보가 자동으로 안 뜨는 거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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