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10.26 [발췌]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민음사)
  2. 2010.08.26 William Blake's "The Tyger"
  3. 2009.10.06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3
  4. 2009.10.01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2
  5. 2009.09.27 Fail better!
  6. 2009.09.15 로스트로포비치와 샤프란,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Op. 104 1악장
  7. 2009.08.25 쎄르반스키 Szervánszky
  8. 2009.07.21 Ne havas / Mi havas vivon

[발췌]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민음사)

리토르넬로 2010. 10. 26. 00:41

(12) 
아니다! 그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풍경들은 정확하게 똑같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같게 느껴진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예상 못 했고, 몰랐으며, 게다가 이해도, 생각조차도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16)
마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건 똑같은 게 아니라는 의미 아닌가.

(26)
진정과 위안이 번져 나갔다. 이곳, 돌로 지은 교회 안에서 농부는 다시 농부가, 지주는 다시 지주가, 미사는 다시 미사가, 돌은 다시 돌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30)
그것은 끝없는 성운 어느 한 귀퉁이에서 일어나는 색다른 공연, 어둠 속에서 괴상한 몸짓과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나부대는 인간들의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우리 존재는 이렇게 무한한 공간에 잠김으로써 뜻밖에도 어떤 구체성을, 생생한 현실감을 얻고 있었다. 인간은 이 우주에 돌이킬 수 없이 던져져서 샅샅이 규명된 어떤 것이었다.

(31)
절대적 어둠 속에 홀로 버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솟아오른 이 관능. 불현듯 기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이 있다면 그건 하늘에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닌 바로 이런 기적이겠구나 싶었다.

(33)
그녀의 등과 뒷목의 선은 여전히 소녀의 것이었다. 내 눈은 그녀의 목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녀의 목이 조금 전에 보았던 또 다른 목과 아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보였다. 그녀의 목과 또 다른 목이 내 눈앞에 나란히 있었다. 그렇다. 두 개의 목. 이 둘은…….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녀의 (소녀다운) 목이 마치 그것만 몸에서 빠져나와 조금 전에 본 그 (소년의) 목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하나는 끌려가고 다른 하나는 끌어당기는 것처럼. 

(91)
'아직 어린', 너무 가벼운, 무게를 지니지 못한, 그래서 그 부족함과 미완성을 통해 원천적인 힘을 행사하는 이 소년과 함께……. 

(99) 
조금 전 우리가 목격했던 일. 꿈틀거리던 지렁이의 몸통을 번갈아 짓이기던 그 두 개의 천진한 다리. 둘은 잔인한 공범자였다. 그런데 잔인하다고? 그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었던가? 차라리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편이 옳지 않을까. 사람들이 길을 걸어갈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거기 있기 때문에 지렁이를 밟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많은 지렁이를 밟아 으깨는가! 그렇다, 그 둘의 행동은 잔인한 것이 아니라 분별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죽음의 고통을 호기심에 찬 어린아이의 눈으로, 재미있다는 듯, 아무런 가책 없이 응시하고 있었을 뿐.

(100)
우주 공간이 하나이듯 고통도 '하나'다. 고통이란 작은 조각으로 분할할 수 없다.

(102)
'죄악'이라는 이 짧은 단어가 숨기고 있는 희망, 가능성이란 경이로운 것이었다.
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은밀히 저지른 수치스러운 죄악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존재 속으로 깊숙이, 마치 사랑의 행위를 할 때 육체를 통해 상대방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만큼이나 깊숙이 파고들게 해준다고.

(107)
'사실은'이라니.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이 단어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말하게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흐릿하게 지워버리는 이 마술의 단어. 

(111)
'예쁜'……. 가슴 쓰리게도 '예쁜' 그 모습. 그 두 사람은 '예뻤다.'

(118)
내가 생각하기에 그때 그녀의 심리 상태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안목 있는 비평가에게 선보일 기회를 잡은 시골 화가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란 그녀 자신, 그녀의 삶이 아닌가.

(119)
… 그는 자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고 했다. 예를 들면 쥐었다가 폈다가 끊임없이 비틀고 꼼지락거리던의 손. 나는 그의 손이 지극히 손다워지는 것을, 손 아닌 모든 것을 차츰 지워버리고 오직 손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보았다.

(129)
이렇게 서서히, 얼마간 이야기가 이어진 다음, 그가 말하고 있는 것 뒤편에서 그가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말 없는, 말을 벗어난 진짜 말. 단어들로는 옮길 수 없는 어떤 의미가 실린 그것.

(133)
이 무슨 역설인지! 모두가 그녀 단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그럴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모여 있는 이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움직임이 허용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135)
그건 사랑이 아니라, 보다 개인적인 차원의 어떤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확인을 그리스도에게 갈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명민한 의식의 소유자일 뿐 한 인간에 불과한 프레데릭에게서 얻어내려 함으로써 사상의 어떤 놀랄 만한 이단성을 노출했다.

(169)
내게 있어 민족과 그것에 따라붙는 일체의 것들, 낭만주의의 이 부산물들은 결코 마실 수 없는, 날 괴롭히기 위해 조제된 혼합 음료였다.

(170)
대독 저항운동, 전투적……. 이런 단어들이 별안간 매일의 삶보다 훨씬 생생한 진실을 띠고 다가와서 신선한 바람처럼 실내를 한 바퀴 휘감아 돌았다. 

(201)
설마 내가 말하는 게 저 낡은 하느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바로 자연이라는 오래된 원리 말입니다. 자연이 지금처럼 무언가 예기치 못한 걸 가지고 우리의 옆구리를 치면, 거기에 저항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굽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하는 걸 내심 포기해서는 안 되지요. 특히 필요한 건 그걸 끝끝내 응시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야 자연도 알 게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우리의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은 처음 우리에게 참견할 때는 늘 분명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얼마 지나면 마치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린 듯 감시가 느슨해지곤 하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자연의 어떤 너그러움을 기대하면서 은근슬쩍 우리 자신의 일로 되돌아오면 됩니다…….

(202) 
그는 나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지칠 줄 모르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259)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을 때 헤니아가 자신을 혐오하게 될 거라고 걱정했듯이, 이제 살인자가 된 카롤은 그녀에게 끔찍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그러나 이건 그가 꽃에 코를 갖다 대고 향기를 음미하는 대신 영혼을 킁킁거리기만 하는 데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그는 죄악이 추하고 미덕은 아름답다는 말을 과신하고 있었다. 이 범죄가 카롤의 육체를 빌려 행해질 경우 어떤 심미적인 향취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을 때의 맛과는 다를 거라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다.

(280)
단지 어머니이기만 한, 어머니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 시효 지난 존재는 마찬가지로 시효 지난 과거에 잠겨 허우적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머니에 대한 경건한 숭배에 취해 멀어져 갔다. 나는 그녀가 우리 일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무엇이기 이전에 우선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녀가 현재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동안 그녀의 낡은 젖가슴이 춤을 추었다.

(281)
성숙한 인간은 자신이 타인의 마음에 드는지, 자신이 호감을 주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할 뿐이다.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가 여부에 따라 어떤 것이 아름답고 어떤 것이 추한지가 결정된다. 

(291)
젊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한한 쾌감이 번져왔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이 떼어놓는 발걸음 아래서 끔찍한 성격의 한 행위가 다른 눈부신, 생기를 불어넣는 어떤 행위로 바뀌고 있는데……. 다만 한 가지 마응에 걸리는 점은, 살금살금 발끝을 세워 다가오고 있는 이 젊음의 종류였다. 이 젊음은 과연 순수한 것인가? 이것은 정말로 신선하고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순진한 젊음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른들을 위한' 젊음이었다. 문밖의 저 소년과 소녀가 이 모험에 가담한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였다. 고분고분한 태도로, 우리의 환심을 사고,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고 그 젊음을 '향해 뻗어 나간' 나의 성숙은 성숙을 '향해 내밀어진' 그들의 젊음과 시에미안의 몸뚱이 위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만남은!



:

William Blake's "The Tyger"

리토르넬로 2010. 8. 26. 01:41




Arthur Quiller-Couch, ed. 1919. The Oxford Book of English Verse: 1250–1900.
  
William Blake. 1757–1827
  
489. The Tiger
  
TIGER, ti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  
 
In what distant deeps or skies          5
Burnt the fire of thine eyes?  
On what wings dare he aspire?  
What the hand dare seize the fire?  
 
And what shoulder and what art  
Could twist the sinews of thy heart?   10
And when thy heart began to beat,  
What dread hand and what dread feet?  
 
What the hammer? what the chain?  
In what furnace was thy brain?  
What the anvil? What dread grasp   15
Dare its deadly terrors clasp?  
 
When the stars threw down their spears,  
And water'd heaven with their tears,  
Did He smile His work to see?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   20
 
Tiger, tiger, bur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Dare frame thy fearful symmetry?  




: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리토르넬로 2009. 10. 6. 03:36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I am a thousand winds that blow.
I am the diamond glints on snow.
I am the sun on ripened grain.
I am the gentle autumn rain.
When you awaken in the morning's hush
I am the swift uplifting rush
Of quiet birds in circled flight.
I am the soft stars that shine at night.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cry;
I am not there. I did not die.


Mary Elizabeth Frye
http://en.wikipedia.org/wiki/Mary_Elizabeth_Frye


 

:

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리토르넬로 2009. 10. 1. 03:02


하……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우리들의 敵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敵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惡漢이 아니다

그들은 善良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民主主義者를 假裝하고

자기들이 良民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選良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會社員이라고도 하고

電車를 타고 自動車를 타고

料理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雜談하고

同情하고 眞摯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原稿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海邊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散步도 하고

映畵館에도 가고

愛嬌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戰線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延禧高地도 아니다

우리들의 戰線은 地圖冊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職場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洞里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焦土作戰이나

「건 힐의 血鬪」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

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0. 4. 3>

 

 

:

Fail better!

리토르넬로 2009. 9. 27. 08:11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늘 도전했다. 늘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도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Samuel Beckett, Worstward Ho (1983)


'더 나은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투쟁을, 투쟁 자체인 우리의 삶을 '완성'의 관점이 아니라 '실험'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가자, 가장 나쁜 곳으로(Worstward Ho)!'
 


:

로스트로포비치와 샤프란,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Op. 104 1악장

리토르넬로 2009. 9. 15. 19:07






만약 당신이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에 감동을 받았다면
샤프란의 연주를 들을 때까지 기다리시오.

-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
 



 

:

쎄르반스키 Szervánszky

리토르넬로 2009. 8. 25. 03:53


리토르넬로 섹션에 뭘 포스팅할까 생각하다가 쎄르반스키 Szervánszky가 떠올랐다.

한번의 마주침만으로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그래서 어렴풋한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그런 것이 있다.
나에겐 쎄르반스키의 음악이 그렇다. 그의 음악 중 내가 아는 거라고는 Wind Quintet No.1 밖에 없다.  
Wind Quintet 전곡도 아니고 No.1만, 그것도 딱 한번 들어봤을 뿐이다.
단 한번의 감상 이후 완전히 매료된 나는 인터넷을 뒤지고, 음악 전공자에게 물어보고,
유럽여행 가는 사람에게 CD를 부탁하는 등 온갖 부산을 다 떨었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CD입수에 실패했고,
아마존에 주문할 만큼 열성적이진 않았던 나는 그냥 그렇게 묻어둔 채 가끔씩 유투브를 검색해보곤 했다. 
그.런.데. 예전에 쎄르반스키의 관현악 UCC를 발견한 데 이어, [wow~]
드.디.어. 며칠 전 목관5중주 UCC를 발견했다. [olleh!!]
비록 1악장 뿐이지만 반갑기 그지 없다. ㅠ.ㅠ



 E. Szervánszky  
 Wind Quintet No.1 Mv.1 
 Berlin Philharmonic Wind Quintet


쎄르반스키의 음악을 만난 건 무려 4년 전에 보았던 Wind Quintet 공연에서였다.
그때 C. 르페브르, 무진스키와 함께 연주되었는데,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낯선 이가 바로 쎄르반스키였다.
(총 네 작품이었는데 다른 하나는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무진스키는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샤를 르페브르는 아마 앙리 르페브르 덕분에 괜한 친근감을 느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H. 르페브르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름만 안다. -.- )

아니나 다를까 연주자가 소개하길 쎄르반스키의 Wind Quintet은 자신들의 공연이 한국 초연이라고 했다.
Wind Quintet만이 아니라 쎄르반스키 자체가 초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연하게도 음악 역시 낯설었는데, 뭔가 서늘했다.
서늘하다는 말이 으레 떠올리게 하는 공포스러운 느낌(간담이 서늘... 뭐 이런 식?)이 아니라,
유쾌하게 서늘한 낯섦이었다. 마치 "the wind that blows through me" 같은.
 
까마득한 기억을 더듬어 쓰는 거라 자신은 없지만 그때의 느낌을 옮겨보면...
르페브르의 작품은 클래식 하면 떠올릴법한, 고전파 음악을 충실히 잇는 그야말로 '클래식' 음악이었다.
4/4박자에 밝고 경쾌한 선율. 어떠한 깨짐도 서걱거림도 없는 안정적인 협화음.
반대로 무진스키의 작품은 클래식과 재즈 사이를 오가는 음악이었다.
빠르게 몰아치는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선율이 인상적이었던 음악.  

그런데 쎄르반스키가 주는 느낌은 아주 묘했다.
협화음도 불협화음도 아닌, 안정도 격정도 아닌, 클래식도 모던도 아닌, 그 중간쯤 어딘가.
그렇지만 절충이나 타협으로서의 중간이 아니라 둘과는 완전히 다른, 그런 새로운 오묘함.
양 끝점을 이은 선상(線上)의 어딘가가 아니라 이미 그 선을 벗어난 어딘가에 있었다.

요런 느낌은 다음 곡에서도 이어진다.
타악이 리드하는 오케스트레이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강렬한 음악.  



 E. Szervánszky 
 Hat zenekari darab(= six pieces for orchestra) VI. Allegro molto 
 Zuglói Filharmónia Szent István Király Szimfonikus zenekar 



***

Endre Szervánszky  (1911. 12. 29 - 1977. 6. 25)

헝가리 작곡가. 어린 시절 클라리넷을 연주했고, 1922-1927년 프란츠 리스트 음악 아카데미를 다녔다. 프로연주자로 몇 년간 활동한 후, 1931년 Albert Siklós 아래서 작곡을 공부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돌아왔다. 1930년대에는 헝가리안 라디오(Hungarian Radio, '라디오 부다페스트'라고도 한다)를 위한 작품을 작곡했고, 1942-1948년에는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훗날 리스트 아카데미의 작곡과 교수로 일했다. 형제로 화가 Jenö Szervánszky와 바이올리니스트 Peter Szervánszky가 있다.

그의 음악은 그의 선배들인 Béla BartókZoltan Kodaly 같은 민속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만년에는 음렬주의(serialism)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Wikipedia)

:

Ne havas / Mi havas vivon

리토르넬로 2009. 7. 21. 03:31


 Ain't Got No, I Got Life - Nina Simone




Ne havas / Mi havas vivon (tradukita de Graco)



Mi ne havas hejmon, ne havas sxuon

나는 집이 없어. 신발도 없어.

Mi ne havas monon, ne havas klason

나는 돈도 계급도 없어.

Mi ne havas jupojn, ne havas svetrojn

나는 치마도 스웨터도 없고,

Mi ne havas parfumon, ne havas barbon

향수도 없고, 수염도 없어.

Mi ne havas menson

나는 마음도 갖고 있지 않아.


Mi ne havas patrinon, ne havas kulturon

나에게는 어머니가 없어. 문화도 없어.

Mi ne havas amikojn, ne havas edukadon

친구도 없고, 교육을 받지도 못해.

Mi ne havas amon, ne havas nomon

나에게는 사랑도 없고, 이름도 없어.

Mi ne havas bileton, ne havas jxetonon

기차표도 버스토큰도 갖고 있지 않아.

Mi ne havas Dion

나에게는 하나님도 없어.


Kion mi havas?

나는 무얼 가지고 있지?

Kial mi estas vivanta iel?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Kion mi havas?

나는 무얼 가지고 있지?

Neniu povas forpreni

아무도 빼앗지 못해


Mi havas haron, Mi havas kapon

나는 머리카락이 있어. 머리도 있어.

Mi havas cerbon, Mi havas orelojn

나는 뇌도 있고, 귀도 있어.

Mi havas okulojn, Mi havas nazon

나는 눈이 있고, 코도 있어.

Mi havas busxon, Mi havas rideton

나에게는 입이 있고, 미소도 있지.


Mi havas langon, Mi havas mentonon

나는 혀가 있고, 턱이 있어.

Mi havas kolon, Mi havas mamon

나는 목이 있고, 가슴이 있어.

Mi havas koron, Mi havas animon

나에게는 심장과 영혼이 있어.

Mi havas dorson, Mi havas sekson

나에게는 등이 있고, 나의 성(性)이 있지.


Mi havas brakojn, Mi havas manojn, Mi havas fingrojn

나에게는 팔과 손과 손가락이 있어.

Mi havas krurojn, Mi havas piedojn, Mi havas piedfingrojn

나에게는 다리와 발과 발가락이 있어.

Mi havas hepaton, Mi havas sangon

나에게는 간이 있고, 피가 있어.


Mi havas vivon, Mi havas liberecon

나에게는 삶이 있고, 자유가 있어.


Mi havas vivon.

나에게는 삶이 있어.


 

*******



Gxi estas teksto de kanto titolita "Ne havas / Mi estas vivon".

이것은 “Ain't got no / I got life"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Gxi estas kantita per Nina Simone.

그것은 니나 시몬느가 부른 노래입니다.

Nina Simone estas fama jxazo muzikisto kaj nigrulo.

니나 시몬느는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자 흑인입니다.

Sed sxi prezentis sian muzikon "nigrula klasika muziko“, ne jxazo.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재즈가 아닌 “흑인 클랙식 음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Kiel cxi tia teksto montras, sxi havis egan identecon kiel nigrulo.

이 가사가 보여주듯이, 그는 흑인으로서의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Kiam mi auxskultas cxi tian kanton, cxiam mi sentas ke io elkrevas en mia koro.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항상 뭔가가 제 마음 속에서 울컥하고 터지는 것을 느낍니다.

Unue sxi kantas pri aferoj kiujn sxi ne havas.

처음에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노래합니다.

Tamen, poste sxi kantas pri aferoj kiujn sxi havas.

그러나 후에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노래합니다.

Gxi signifas jeson pri sia potenco.

그것은 자신의 힘에 대한 긍정을 의미합니다.


Gxi estis kanto por nigruloj.

그것은 흑인들을 위한 노래였습니다.

Sed nun, gxi ankaux estas kanto por ni kiu vivas sub la kapitalismo.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노래이기도 합니다.

Ni sxajnas havi nenion en nuna situacio kiu cxio reduktas al kapitalisma valoro.

모든 것이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원되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Sed tamen, ni havas potencon kiu povas sxangxi tian situacion.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Ni havas koron, animon kaj cerbon kiu povas songxi aliajxojn.

우리에게는 다른 것들을 꿈꿀 수 있는 심장과 영혼과 뇌가 있습니다.

Ni havas busxon kaj langon kiu povas diri niajn pensojn,

kaj orelojn kiuj povas auxskulti aliajn pensojn

우리에게는 우리의 생각들을 말할 수 있는 입과 혀가 있고,

다른 생각들을 경청할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Ni havas krurojn, piedojn kaj piedfingrojn kiuj povas marsxi aliajn vojojn.

우리에게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다리와 발과 발가락이 있습니다.

 

Ni havas nian vivon.

우리에게는 우리의 삶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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