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정치적 생산'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8.10 Michael Hardt, "Politics of the Common" 노트 (4)
  2. 2010.04.20 <Commonwealth> 3.1.3 "삶정치적 생산과 통제의 위기" 논의의 틀
  3. 2010.02.09 조건 없는 기본소득 UCC - Viktor Schreiber편 (2)
  4. 2009.07.31 [펌] 기본소득을 향하여 - 좌익의 정치적 입장 (프로메테우스)

Michael Hardt, "Politics of the Common" 노트

지필묵 2010.08.10 03:05

Politics of the Common
By Michael Hardt, July 6th, 2009
[Contribution to the Reimagining Society Project hosted by ZCommunications]


- 공통의 부에 대한 대안적 운영(management)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 공통적인 것은 두 가지 모습을 띤다. 생태학적/자연적 형태(이하 NC)와 사회·경제적/인공적 형태(이하 AC).

- 저항과 운동(activism)의 관점에서 두 가지 형태의 관계를 고찰해보자.
- 양자는 동일한 논리를 따르는데, 그것은 소유관계를 거부하며 그에 의해 약화된다는 점에 있다. 나아가 양자는 경제적 가치의 전통적 척도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 대신 유일하게 유효한 가치화의 척도(scale), 즉 ‘삶의 가치’를 부과한다.
- 양자의 분할은 삶정치적 관점에서 흐려진다.

- 양자가 상반된 논리를 따르는 경우가 있다. 
  (1) NC가 보존과 한계에 주목한다면, AC는 창조, 개방성, 무한성에 주목한다.
  (2) NC가 인간/동물세계보다 더 넓은 이해관계의 장을 갖는다면, AC는 인류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 양자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순적 관계가 아니라 잠재적인 보완물이다. [UN기후회담을 둘러싼 행동들]

- 삶정치적 생산의 전제
  (1) 생산의 중심성[헤게모니]이란 생산의 다른 부문에, 그리고 사회적 삶에 부과된다는 점에 있다. 즉, 과거에 산업생산이 중심성을 가진 것은 그것이 산업‘경제’만이 아니라 산업‘사회’를 창조했다는 데 있다.
  (2) 이제 산업생산은 더 이상 위계적 위치를 점하지 않는다. 즉, 다른 부문들과 사회 전체에 부과되지 않는다.
  (3) 이제 중심성은 비물질적 생산에 있다. 인지적·정동적 도구들, 임금관계의 불안정하고 비보장적인 성격, 비물질적 생산의 시간성(노동일 개념의 파괴).

- 이러한 생산은 ‘삶정치적’이다. 생산이 ‘삶정치적’이라는 것은 생산이 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들과 삶 형태를 생산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삶정치적 생산에서는 생산/재생산의 구분이 사라진다. 
- 이것은 생태학적 담론과 삶정치적 생산의 근접성을 보여준다. 양자 모두 삶 형태의 생산/재생산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양자의 중요한 차이는, 생태학적 관점의 경우 ‘삶 형태’에 대한 생각을 인간/동물에 제한시키지 않고 더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 재산형태의 위계 : 산업생산 이전 시대에는 이동불가능한 재산 중심이었던 반면, 산업생산 시대에는 이동가능한 재산 중심, 즉 상품 중심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비물질적 재산이 물질적 재산을 지배한다. 비물질적 재산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것은 비물질적 생산의 중심성이 높아짐을 증명한다.

- 전산업생산에서 산업생산으로의 이행에서는 이동성이 중요했던 반면, 산업생산에서 삶정치적 생산으로의 이행에서는 배타성(exclutivity)과 재생산성(reproductivity)이 중요해진다. 삶정치적 생산에는 (1)희소성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고, (2)무제한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하며, (3)개방적으로 공유되더라도 유용성이 사라지지 않으며 오히려 잠재력이 높아진다. 

<공통적인 것의 중심성>
  (1) 지배적인 형태로 출현하는 생산형태는 일반적으로 비물질적/삶정치적 재화로 귀결되는데, 이것은 공통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적이고 재생산 가능하며 점점 배타적 통제가 어려워진다.
  (2) 미래의 경제발전에 있어 그러한 재화들의 생산성은 공통적이 되는 데 의존한다. 사적인 것으로 유지시키는 것은 새로운 것의 생산에 무익하며 그것을 저해한다. 자본은 (역설적으로) 점점 공통적인 것에 의존한다.

<공통적인 것의 두 가지 논리적 특징>
  (1) 소유관계를 거부하고 그것에 의해 약화된다.
- 비물질적 소유형태는 배타적 권리를 지키기 어려우며, 사적인 것으로 만들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 생산의 핵심에서 강력한 모순이 출현하는데, 그것은 생산성을 위한 공통적인 것과 자본주의적 축적을 위한 사적인 것의 충돌이다. 
- NC 역시 소유관계를 거부한다. 환경적 효과들(그것이 이로운 것이든 해로운 것이든)은 항상 소유관계를 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유관계에 의해 약화된다. 축적의 사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피해는 사회적(보편적)이다. => 생산의 공통적 성격과 자본주의적 축적의 사적 성격 사이의 갈등. [볼리비아 물․가스 투쟁]
  (2) 지배적인 가치척도를 초과한다.
-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외부성”. 회계사들이 말하는 “무형자산”.
- 가치척도를 초과한다는 것은 양적 초과가 아니라 척도체계 자체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 삶정치적 재화의 가치화에서 금융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생산의 새로운 지배적 형태들을 포착하는 데 무능하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 오늘날 경제적 재화와 활동의 가치가 전통적 척도를 초과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이 생산에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 NC 역시 측정불가능하며 척도에 순응하지 않는다. 온난화나 환경오염 등으로 인해 파괴된 삶 형태의 가치는 측정불가능하다. 교토의정서 등 각종 협약들은 공통적인 것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측정하지 못한다. 다만 아주 간접적으로, 공통적인 것을 해치고 부패시키는 가스의 생산에 화폐적 가치를 할당할 뿐이다. => 삶 형태는 측정불가능하다. 아마도 그것은 삶의 가치에 기반한, 근본적으로 다른 척도를 따를 것이다. 이것은 창안되어야 한다.

- 공통적인 것의 두 형태들이 모두 소유관계에 저항하듯, 양자는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전통적 척도를 거부한다. 양자가 공유하는 특질들은 자율을 위한 정치적 행동과 공통적인 것의 민주적 운영을 연결시키는 데 토대를 구성한다.

- 공통적인 것의 정치
(1) NC : 희소성과 한계에 관한 것이다. 공통적인 것은 아주 많은 사람들을 지속(생존)시키면서도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재생산된다.(The common can only sustain so many people, for instance, and still be successfully reproduced.) 지구, 특히 야생의 공간은 산업적 발전과 여타의 인간행위들이 주는 피해에 맞서 지켜져야 한다. <보존과 한계>
(2) AC : 생산의 무제한적 성격을 강조한다. 아이디어, 정동 등을 포함한 삶 형태의 생산에 고정된 한계란 없다. 물론 그것은 더 많은 아이디어가 반드시 더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희소성의 논리 하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제한 없는 창조적 잠재력>

- 공통적인 것을 위한 투쟁들 사이에 있는 기본적 갈등들
(1) NC는 발전에 반대하고 AC는 발전에 찬성한다? : 이것은 너무 단순한 관점이다. 두 경우에서 다뤄지는 발전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이기 때문에, 즉 공통적인 것의 사회적 생산과 관련된 발전은 산업적 발전과 분리되기 때문이다.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전통적 분할이 붕괴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나면, <보존>에 대한 요구와 <창조>에 대한 요구가 반대되지 않고 상보적임을 더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인간의 이해관계가 준거틀이 될 경우 : AC는 인류의 이해관계를 중시하지만, NC는 인류를 넘어 생태 전체(비-인간의 이해관계까지)를 다룬다.

메모 : NC를 사고할 때 필요한 관점은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이다. NC의 영역에서 강조되는 <보존>은 접근 금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위적 보존(가령 그린벨트)이 아니라, NC의 자기재생산 능력의 보존이다. 산업생산과 다른 접근, NC의 자기재생산 능력을 해치지 않는 공통적 접근이 필요하다.[성미산투쟁] 이것은 바꿔 말하면 ‘인류를 위해 자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아니라,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이다. 

- 이러한 차이는 넘어설 수 없거나 파괴적인 차이가 아니다. 이것은 운동에서나 이론에서나 양자에게 이롭다. 지구의 한계와 다른 삶 형태(비-인간 영역)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대면하는 것이 사회적 투쟁에 집중하는 이들에게 유익하듯, 사회적 위계의 성격과 그 위계와 싸울 수단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대면하는 것은 환경에 집중하는 이들에게 유익하다.

- 공통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몇몇 핵심쟁점들을 명명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 공통적인 것을 놓고 투쟁하는 것과 그것을 운영할 대안적 수단들을 창안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를 재구상하는 기획에 있어 근본적이다.
- 공통적인 것의 두 측면의 분기와 차이들은 절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이 자체는 건강하며 우리를 전진시킨다.
- UN기후회담에 주목. 환경운동가, 반자본주의운동, 다른 사회운동들의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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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wealth> 3.1.3 "삶정치적 생산과 통제의 위기" 논의의 틀

지필묵 2010.04.20 19:36


 '노동'의 기술적 구성
자본의 대응 (통제방식) 

다중의 요구
비물질적 생산의 헤게모니 
공통적인 것을 파괴하기

재전유권 
 노동의 여성화
불안정성(precarity) = 시간의 빈곤

보장소득 
이주와 사회적 혼합 
 인종적·사회적 장벽들 = 공간의 빈곤  

전지구적 시민권 

                       구성                                             탈구성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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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기본소득 UCC - Viktor Schreiber편

NUDA POTENZA 2010.02.09 23:29

Unconditional basic income - Teaser - Viktor Schrei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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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기본소득을 향하여 - 좌익의 정치적 입장 (프로메테우스)

뚝딱뚝딱 2009.07.31 01:36
[번역] 기본소득을 향하여 - 좌익의 정치적 입장
프로메테우스 메일보내기

기본소득제도는 21세기형 사회복지 제도로 최근 세계 곳곳에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최초에 일부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고안된 기본소득제도는 브라질, 나미비아 등에서 정책화되고 있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활발하게 정책 차원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는 원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독일에서의 기본소득 논쟁 지형과 좌파정당 안팎의 입장을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글입니다.

한국에서는 최근 사회대안포럼(http://alternative-forum.tistory.com 운영위원장 금민)이 기본소득과 관련한 포럼을 연속으로 주최하고,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와 곽노완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가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을 발표하면서 기본소득이 21세기 경제 대안 정책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당은 기본소득위원회를 특별위원회로 설치해 한국 정당 최초로 기본소득을 사회 의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발표 / 카트야 키핑(독일 좌파당 부대표, 연방하원의원)

△ 카트야 키핑
무엇보다도 1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에 초대되어 여러분들에게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관한 좌익의 정치적 입장을 말씀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에 대해 매우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기본소득이 어떻게 쟁취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논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지배적인 정치 투쟁 안에서 우리의 처지가 어떤지를 분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이 어떻게 실행되고 쟁취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제가 여러분에게 독일에서 있었던 논쟁들의 간략한 개관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I. 독일에서 있었던 논쟁들의 개요

지난 5년에 걸쳐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대중성을 획득했습니다. 기본소득은 토크쇼와 신문 모두에서 토론 주제가 되었습니다. 매우 다양한 배경들을 지닌 정치 재단들이 이러한 주제를 그들의 의제로 삼고 있습니다.

독일 기본소득 네트워크의 발전은 늘어나는 관심의 한 예입니다.

이 네트워크는 2004년 7월 베를린의 사회과학연구센터에서 창설되었는데, 이 때 동시에 실업수당 개혁에 관한 종합 정책인 ‘하르츠 IV’가 연방상원에서 채택되었습니다. 이런 조우는 매우 상징적인 것이었습니다! 정치 계급이 실업자에 대한 억압과 배제를 증가시키는 법률 꾸러미를 채택하고 있는 동안 시민사회의 몇몇 대표자들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지지하기 위해 모였던 것이니까요.

창립 당시에 이 네트워크는 실업자운동, 교회그룹, 과학자와 다양한 정당들의 대표자들 등 매우 다른 배경들을 지닌 약 50명의 회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로부터 4년 후인 2008년에는 이 네트워크가 1500명 이상의 회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 그룹도 점점 더 많은 도시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독일 네트워크는 특정한 기본소득 모델을 지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 네트워크를 설립할 때, 창립 회원들은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란 이름을 쓸 가치가 있는 어떤 모델이 반드시 충족시켜야 할 다음의 네 가지 기준에 합의했습니다.

1. 생계 보장을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특정한 액수를 언급하지 않지만, 대강의 지침은 있습니다. 이는 기본소득이 적어도 사람들이 빈곤 속에서 생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개인별로 수급 자격이 주어져야 합니다.

3. 자산 심사가 전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4. 기본소득에 대한 대가로서 노동 요구가 없습니다!

어떤 범위까지는 약국 체인점 소유주인 성공적 사업가 괴츠 베르너가 점증하는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노동 요구에 반대하는 그의 주장 방식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역할은 또한 양면적입니다. 제가 이를 언급하는 것은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여러분들이 좌익들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몇몇 논쟁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한 토크쇼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그의 종업원들에게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하기를 바라는지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기를 바라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물론 더 낮은 임금이죠.”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좌익의 입장에서 보면 사업가가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할 계획을 세우고 있을 때 이는 매우 우려할만한 것입니다.

사회단체들의 상황

예를 들어, 가톨릭 사용자 운동, 가톨릭 청년단, 녹색당 청년 조직 등과 같이 조직 전체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몇몇 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에서는 기본소득이 뜨거운 논쟁의 주제이고 심지어 극단적인 충돌이 있기도 합니다. 동일한 단체 내에서도 기본소득이 우리 문제들에 대한 유일한 하나의 해법이라고 전적으로 확신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고, 기본소득이 악마보다 더 나쁘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노동조합 관료들은 이러한 아이디어에 반대하는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들이 이 싸움에서 마키아벨리가 그의 책 <군주론>에서 언급했던 조언 모두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심지어 노동조합 내부에서조차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상당수 늘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노동조합 청년 조직과 노동조합 내 실업자를 대표하는 그룹들 안에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노동조합을 기본소득과 가까워지게 하고 싶다면, 청년 조직들을 접촉하십시오. 그들은 보통 관료들보다 더욱 개방적입니다.

독일 정당들 내부의 상황

80년대에 기본소득을 토론했던 것은 녹색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 이 아이디어는 오랫동안 망각되었습니다. 오랜 침묵이 흐른 후 이 주제를 다시 정치의 의제로 올려놓은 것은 새로운 좌파당 당원들의 주요 원천 가운데 하나가 된 예전의 PDS, 민주사회당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논쟁에서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PDS 내에서 다수가 그것에 찬성했었는지 아니면 반대했었는지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녹색당 정치인들이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매료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발전은 또한 PDS의 대표자로서 제가 독일 기본소득의 무대에서 이러한 아이디어와 관련을 맺었다는 사실에 의해 고취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정당들 사이의 경쟁이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촉진을 돕는다면 좋은 것입니다. 지금 좌익과 녹색 기본소득 지지자들 사이에는 친밀한 협력이 있습니다.

사회민주당 내에서는 이 아이디어를 주장하는 약간의 지역 지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사회민주당 의원은 찾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저희 의회그룹에는 6명의 확고한 지지자가 있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있고 녹색당 의회그룹에는 10명이나 되는 지지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보입니다. 하지만 독일 의회 내에서 다수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지지하게끔 만드는 것은 까마득한 일입니다.

좌파당 내부의 상황

저는 좌파당 창당이 일반적으로 좌익의 목표에 부합하는 훌륭한 일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보수파의 점증하는 영향력 탓에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주장들이 점점 더 거칠어져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창당 강령에서 토론할만한 가치가 있는 이슈로 언급되는 것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창당 강령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 그룹들과 함께 기본소득 이슈를 한층 더 토론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저는 당 대회에서 다수가 기본소득에 대한 제안을 승인할 수 있을지 어떨지 의문스럽습니다. 그리고 51 퍼센트가 찬성에 투표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49 퍼센트는 그러한 결정을 당을 떠나기 위한 근거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요약하자면, 기본소득은 강한 극성을 지닌 주제입니다. 이것은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게는 꽤 도전적인 상황입니다.

좌파당 내에는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전념하는 매우 적극적인 연방연구그룹이 있습니다.

II. 좌익 입장의 한 예로서 연방연구그룹의 기본소득 구상

이제 좌파당 내의 기본소득에 관한 연방연구그룹이 지지하는 기본소득 모델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 또한 개인적으로 이러한 구상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좌파당 전체의 입장은 아니라는 것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 마지막 단계에서 이 구상은 16살과 그 이상의 모든 사람에게 950 유로의 기본소득을 제공합니다. 이 액수는 빈곤 위험 경계에 기초한 것입니다.

• 기본소득은 액수의 삭감이 없다면 다른 모든 소득원과 합쳐질 수 있습니다.

• 기본소득은 모든 소득원에 대한 35%의 부가세 + 사치품에 대한 세금 + 주요 에너지세로 재원이 마련될 것입니다. 총괄적으로, 인구의 가장 부유한 3분의 1은 기본소득의 도입 탓에 손해를 볼 것이고, 반면 중간층과 인구의 가장 가난한 3분의 1은 기본소득을 도입함으로써 이득을 볼 것입니다.

• 어떤 개인이 기본소득 수급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시민권보다는 거주지입니다.

사회적으로 헌신적인 사람들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견지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다음과 같은 부가적인 조건들과 결합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1. 기본소득은 적어도 시간당 8유로의 통상 최저임금과 결합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임금을 받기를 원합니다. 기본소득은 임금의 대체물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기본소득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노동의 재분배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동시간의 단축과 결합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기본소득은 성 평등을 위한 보편적인 투쟁 속에 위치해야 합니다. 오늘날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보다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사회적 재생산 노동의 50%는 남성이 수행하기를 원합니다. 사회적 재생산 노동은 균등하게 분배되어야 합니다. 시간의 정치학이라는 주제에 관해 제가 정말 매료되었던 한 이론을 언급해야겠습니다. 좌익 페미니스트인 프리가 하우그가 발전시킨 사위일체의 견해입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일하는 주는 다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1. 노동, 2. 사회적 재생산 노동, 3. 사회적 혹은 정치적 활동, 4. 창조, 사랑 혹은 자신의 능력향상을 위한 시간.

4. 기본소득은 의심의 여지없이, 예를 들어 사회 보조 혹은 대학생 보조와 같은 현존하는 몇몇 사회 수당들을 대체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보험은 부담의 나눔에 있어서 균등과 연대를 위하여 기본소득의 도입 이후에도 남아있어야 합니다. 좌익의 관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은 연금, 건강, 요양, 실업 보험 체계와 같은 현존하는 사회보험 형태들을 대체/대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지지하는 기본소득은 현존하는 사회보험 형태들에 덧붙여지는 것입니다.

5. 장애인처럼 특별한 요구가 있는 사람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그들의 특정한 환경을 반영하는 유용한 추가적인 지원 형식을 필요로 합니다.

6.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은 지구적인 사회적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을 위한 투쟁 속에 위치해야 합니다.

7. 기본소득은 새로운 교육 윤리와 결합되어야 합니다. 현존하는 교육 체계는 여전히 억압과 강제의 방법들을 통해 강력히 지배되고 있습니다. 이 대신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북돋우는 교육 체계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시민사회 내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을 경우에만 의회에서 다수를 획득할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인구의 다수가 설득된다면 우리는 정당들 내의 기회주의 경향에 의존할 수도 있습니다. 시민사회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우리는 기본소득의 장점들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좌익의 입장에서 제가 이루고 싶은 것입니다.

III. 좌익의 정치적 입장에서 기본소득의 장점들

• 정치적 논쟁에서 평등과 자유는 종종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이러한 두 가지 목표를 모아내는 프로젝트입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을 결핍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입니다. 보조를 요청해야만 하는 것에서 오는 굴욕감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자기결정권을 가져다줍니다.

• 현존하는 사회 수당들은 낙인을 찍는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기본소득은 그것과 정반대로 낙인을 찍는 것도 억압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 결과 감춰진 빈곤의 문제 혹은 보다 적절하게 “수치스런 빈곤”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 결핍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은 사람들을 그들의 고용주들에 맞서는 보다 나은 협상의 지위에 올려놓습니다. 오늘날 저임금과 심지어 지불되지 않는 추가 노동시간이 종종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실업자가 되는 것은 여전히 빈곤, 배제, 억압의 체제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본소득의 도입은 따라서 고용인들의 지위를 강화시킬 것입니다. 이는 또한 그들의 협상력도 강화시킬 것입니다. 향상된 협상의 지위는 더 높은 임금과 노동시간의 단축을 이끌 수 있고 노동 조건의 민주화 과정 또한 시작할 수 있게 합니다.

• 이미 언급했듯이, 기본소득은 일반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을 보다 쉽게 해줍니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 향상을 위해 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을 쓰도록 허용합니다.

• 모든 시기에 소득이 제공된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든든함은 연대에 기초한 경제 활동 양식을 북돋우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재정 안정 수준을 보장함으로써 사람들을 착취에 덜 취약하도록 해줍니다.

기본소득이 트로이의 목마로 역할하며 내부로부터 자본주의의 붕괴를 불러올까요, 아니면 편안히 자본주의의 틀 속으로 편입될 수 있을까요? 이는 이론이 분분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자본주의에 고유한 “유용성” 논리를 깨뜨린다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의 도입이 체제 전환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이윤 동기 너머를 내다보는 경제 형태를 위해서는 훨씬 더 나은 조건을 창출할 것입니다.

IV. 점진적으로

저는 우리가 기본소득의 도입을 곧바로 달성할 수 있을지 어떨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다음과 같은 이중 전략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대한 옹호를 계속해야 하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을 향하는 구체적인 첫 단계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아마도 아이, 연금생활자 혹은 대학생을 위한 기본소득이 첫 도입 단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 단계는 전액 급여를 받는 안식일의 도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면 실업자를 위한 현존 사회수당이 개선되어야 하고, 기본소득의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는 충분한 조건부 소득 이전을 뜻합니다. 이는 자산 심사를 가능한 한 제한하고 노동 요구 또한 제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방향에서 점진적으로 다수가 이미 기본소득에 근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를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은 보다 쉬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꿈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서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옛날 옛적에, 먼 옛날에 사람들이 기본소득이 있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고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지금은 우리가 기본소득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고대하고 있는 날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원문] Kipping, Katja, “Moving to Basic Income(BI): A left-wing political perspective”, 12th Basic Income Earth Network Congress(Jun 2008).
[번역] 최광은 / 사회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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