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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리토르넬로 2009. 10. 1. 03:02


하……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우리들의 敵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敵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惡漢이 아니다

그들은 善良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民主主義者를 假裝하고

자기들이 良民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選良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會社員이라고도 하고

電車를 타고 自動車를 타고

料理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雜談하고

同情하고 眞摯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原稿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海邊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散步도 하고

映畵館에도 가고

愛嬌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戰線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戰線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延禧高地도 아니다

우리들의 戰線은 地圖冊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職場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洞里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의 모습은 焦土作戰이나

「건 힐의 血鬪」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거리를 걸을 때도 歡談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土木工事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市場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戀愛를 할 때도 졸음이 올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授業을 할 때도 退勤時에도

싸일렌소리에 時計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있다

民主主義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民主主義式으로 싸워야 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民主主義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 그림자가 없다

 

하…… 그렇다……

하…… 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 그렇지 그래……

응응…… 응…… 뭐?

아 그래…… 그래 그래.

 

<196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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