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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I 세미나] 블라쉬케, 「당신의 목표는 임금노동의 노예?」

지필묵 2010. 1. 11. 15:11


■ 로날트 블라쉬케의 「당신의 목표는 임금노동의 노예? : 라이너 로트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비판」에 대한 리뷰


블라쉬케의 글은 제목처럼 로트의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하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비판이며, 로트가 지닌 경향은 크게 5가지 쟁점으로 다뤄지지만 결국 임금노동원리로 요약된다. 이는 좌파 안에서 여전히(어쩌면 오히려 더) 강고하게 작용하는, 기본소득 담론이 넘어서야할 대표적인 경향이다. 

  1. 곤궁함에 대한 심사(이하 심사) 
- 로트 : “기본소득 액수를 확정할 때 필요와 동시에 곤궁함이 조사되어야 한다”. 심사의 폐지는 결국 심사 주체가 지불당국에서 재정당국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심사에 대한 거부를 원하는 만큼 취할 수 있음을 의미할 텐데 일정한 액수로 제한되는 기본소득의 지불방식과 모순된다.
- 블라쉬케 : 세액사정과 기본소득 액수에 대한 사회적 토론 및 결정은 심사와 별개이며, 기본소득은 ‘원하는 만큼’을 주장하거나 보장하지 않는다.   

  2. 콤비임금[각주:1] 
- 로트 : 기본소득이 콤비임금이 되어 임금축소를 가져올 것이며, 노동자로 하여금 저임금노동을 수용하도록 만들 것이다.
- 블라쉬케 : 오히려 유리한 협상지위를 갖게 된다. 기본소득은 “임금의존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마음에도 없는 조건으로) 파는 생계적 필연성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사회이전지출”이며, 탈상품화의 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가진다.

  3. 노동강제 
- 블라쉬케 : 로트와 같은 논자들은 노동강제의 특정 형태만을 문제 삼지만, 기본소득은 모든 노동강제에 반대한다. 노동강제를 승인하면 노동을 거부하는 자는 “국가의 사회이전지출 중단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기본소득은 “돈을 위해 일시적으로 일하지 않을 혹은 아예 일하지 않을 결정의 자유”를 위한 것이며, 기본소득은 자본주의에서 생계에 근거한 노동강제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4. 최저임금
- 블라쉬케 : 로트는 충분한 법적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종속적인 고용활동자를 위한 최저임금과 실업자를 위한 최저소득은 반자본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임금노동자의 더 나은 지위”가 아니라 “임금노동관계와 자본관계를 근본적으로 넘어서고 따라서 소외를 지양하고자 하는 정치적 접근”이며 “그것은 인간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조건 아래서 그들이 일하고자 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조건과 생활조건을 추구한다.”

  5. 화폐
- 로트 : 기본소득의 특정 모델인 '생활금'은 자본가치증식 상태에 의존적인 분배이며, “자본가치증식의 산물로서 화폐가 증식하는 생산의 영역을 자본에 넘겨준다.”
- 블라쉬케 : 로트는 화폐를 사회적 관계들의 표현이 아니라, 불변하는 ‘사물’로 간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계들이, 구체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생산하는 관계들이 변화되고, 그들의 역량과 생산물이 교환가치에 따라 상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면, 지불수단, 즉 화폐 혹은 그밖에 그렇게 불리는 것 또한 완전히 다른 기능과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한다.

블라쉬케는 화폐의 성격 변화의 예로 ‘능력보수(fähigkeitsentgeltung)’를 들면서 기본소득의 가능성과 미래를 전망한다. 여기서 ‘능력’이란 “필요 노동생산 내에서의 의식적인 구성, 자유로운 협력, 포괄적인 자기결정의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평가”된다. 능력보수는 “사회적 필요노동 영역에서의 능력의 사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목적으로서 따라서 사회적 필요노동영역 저편에 있는 자유로운 능력발전의 물질적 토대”이다. 그것은 “양적으로 따라서 노동시간 혹은 생산물 수/생산물 크기로 똑같은 정도로 점점 더 평가될 수 없는, 비물질적 재생산에서 획득되는 구성능력의 사용을 반영”한다. 그래서 앞으로 총소득은 (1)노동에 의존하지 않는 일반적인 기본소득 + (2)능력보수로서의 부가적인 노동보수로 구성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 기본소득은 생산을 '임금(wage)/교환가치'가 아니라 '소득(income)/사용가치'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기본소득 담론은 단순히 분배정의의 실현이나 사회안전망의 강화에 그치지 않는 탈근대적 생산 담론(삶정치적 생산)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 이 글에서 제시되는 기본소득의 핵심은 기초생활에 대한 보장이 아니라 그것이 낳는 효과, 즉 자기결정(주로 ‘생계를 위해 억지로 일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보장이다. 이로써 빈민구제책,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신케인즈주의 등과 완전히 결별한다. 그러나 노동거부 못지않게, 임금노동 외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창조적 생산활동에 대한 긍정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 

* 능력보수는 기본소득의 발전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보수와 소득을 동의어로 보아도 무방한지와 ‘부가적인 노동보수’가 갖는 구체적인 의미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겠다. 내용상 능력보수는 기본소득에서 보장소득으로의 도약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하다. 

* 기본소득은 적어도 초기에는 국가에 의해 운영될 것이므로 많은 딜레마 - 시민권 등, 일국적 나아가 초국적 협치에 의해 관리되는 삶 - 에 놓일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연하게도 ‘어떻게 아래로부터 운영할 것인가’이다. (히로세 쥰이 ‘운동을 통한 기본소득’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참고> 기본소득의 정의(블라쉬케) 
“기본소득은 (1)모든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속하고 보장되는, (2)(빈곤을 퇴치하고, 사회적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생활(Existenz)을 보장하는 액수의, (3)곤궁함(Bedurftigkeit)에 대해 심사(소득심사/재산심사)하지 않는, (4)노동강제와 노동의무 및 활동강제와 활동의무가 없는, (5)국가에 의해 지불되는 기본소득이다. 그 이상의 소득은 따로 고려할 필요 없이 가능하다. … 기본소득은 시장의 결함을 고치려는 사회정책적 프로젝트가 아니가. 그것은 더 많은 자유, 민주주의, 인간존엄을 위한 프로젝트다. 그것은 기존사회 너머를 가리킨다.”
- (2) : ‘basic’의 근거. 보장소득과의 결정적 차이.  
- (3),(4) : ‘unconditional’의 근거.


  1. 혼합임금 (Kombilohn) : 저숙련 근로자들에게는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해 근로의욕이 안 생기고, 고용주에게는 생산성 대비 임금인상이 힘든 상황인 저임금 분야의 일자리에 대해 정부가 일정부분 지원하여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http://tong.nate.com/jykim9728/26030813 참조.) 블라쉬케는 콤비임금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1)보조금을 받는 노동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2)(최)저임금에 대한 보조금일 뿐이다. (3)임금해체와 사회(복지)해체가 조장된다’로 요약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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