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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2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아차, 싶었어" 하이미스터메모리의 <해가 사라지던 날> (프레시안)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아차, 싶었어" 하이미스터메모리의 <해가 사라지던 날> (프레시안)

흥얼흥얼 2010. 1. 22. 12:07


이 노래 <해가 사라지던 날>을 처음 들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해가 사라진 후 '개새끼들'이라고 어떤 무리들을 향해 강한 분노를 토해내는 목소리는 흡사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검찰에 대해 공인된 욕설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를 만든 하이미스터메모리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그는 자신이 이 노래를 만든 것이 지난 해 7월 한나라당이 주도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들은 어떤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떠올리고, 또 어떤 이들은 용산참사를 떠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좋은 노래는 바로 그런 노래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 하나의 메시지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수많은 사건들을 다양하게 끌어안으며 각기 다른 경우에도 두루 해석될 수 있도록 열린 메시지를 가진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명작일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이 냉정한 가족과 조직사회, 자본주의를 모두 비판하는 작품으로 늘 새롭게 해석될 수 있듯 이 노래 역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용산참사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노래의 면목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처럼 하나의 노래가 부정적인 사건으로 끊임없이 연상될 수 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이다. 대통령이 바뀐 이후 계속되고 있는 민주주의적 절차와 관용의 실종은 오늘을 수십년전 군사독재의 시절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지금 우리를 통치하고 있는 세력이 과연 어떤 세력인지를 되묻고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함께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새끼들'이라고 부를만큼 나쁜 세력들이 그럴 줄 알았으면서도 아차 싶었을만큼 방심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하거나 몇 년 뒤에나 있을 투표를 생각했던 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면 그것이 당연하고 솔직한 마음임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조금 더 분노하고 지금 조금 더 움직여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기억은 너무 쉽게 잊혀지고 개새끼들을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의 권위적이고 막무가내인 현 정부의 통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미 FTA를 추진하고 노동자들이 분신으로 투쟁할 때가 아니라고 했던 이전 정부에서부터 이미 해가 사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경을 쓰는 것 역시 더 서둘렀어야 할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하이미스터메모리. ⓒEBS스페이스공감
이처럼 <해가 사라지던 날>은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곡이면서 또한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곡 전반부에서 통기타 반주 하나에 실려 오는 하이미스터메모리의 부드럽고 풍성한 육성은 지극히 서정적인 분노의 감동으로 포크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또한 2절 부분에서부터 감겨오는 첼로 연주의 밀도와 드라마틱하게 직조된 일렉트릭 기타 연주의 합주는 하이미스터메모리가 추구하는 포크 록 음악의 수준 높은 완성도를 증명한다.

서정적인 분노 사이에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심어두고 감성적인 사운드를 들려준 하이미스터메모리는싱어송라이터 박기혁의 음악적 예명이다. 2007년에 내놓은 1집 [안녕, 기억씨]를 통해 한국 인디 포크의 대표적 창작자로 자리매김한 그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고 북콘서트에 단골로 출연해 시노래 작업에도 애쓰고 있다.

또한 지난 해 콜트 콜텍 기타 노동조합의 파업과 음악인 시국선언, 용산참사 현장 공연등에도 빠지지 않은 그는 곧 두 번째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4분의 노래 <해가 사라지던 날>이 금세 지나갔듯 진지하고 아름다운 노래가 기대된다. 오늘은 여전히 우울한 시대지만 아름다운 노래는 오늘을 새롭게 되새기게 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말은 아직 유효하다.



<해가 사라지던 날>

작사/작곡/노래 [ㄱ]
어쿠스틱 기타 : [ㄱ], 일렉트릭 기타 : 류승현, 베이스 : 민경준, CHORUS : 현경미
프로그래밍, MIXING, MASTERING : SODA (AT 매직스트로베리 스튜디오)

해가 사라지던 날
개. 새. 끼. 들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아차, 싶었어

냇물인 아무 말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았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가슴이 아팠어

해가 사라지던 날
개. 새. 끼. 들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아차, 싶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취하는 것 뿐이었고
손바닥만한 종잇장만 아른거렸어
해가 사라지던 날
다시 안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어

해가 사라지던 날

(사람들의 기억은 쉽게 잊혀지고 어떤 사람들은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지)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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