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절대적이다

사는 얘기 2012. 5. 28. 03:37


셔우드 앤더슨,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부북스, pp. 11~12 



  책상에 앉아 작가는 한 시간 동안 작업했다. 결국 그는 책을 한 권 써냈고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이란 제목을 붙였다. 이 책은 출판된 적은 없지만 내가 한번 본 적이 있고 이 책이 내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이 책에는 무척 이상하면서 늘 내 곁을 떠나지 않는 하나의 중심적인 생각이 있었다. 그걸 기억함으로써 나는 전에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생각은 복잡한 것이었지만 간단하게 말로 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즉, 세상이 젊었던 태초에는 아주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진리와 같은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이 스스로 진리들을 만들었고 각각의 진리는 아주 많은 막연한 생각들의 복합체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는 진리가 있었고 그 진리는 아름다웠다.

  노인은 자신의 책에 수백 가지의 진리들을 죽 적어 놓았다. 난 여러분들에게 이 모든 걸 다 말하지는 않겠다. 처녀성의 진리도 있었고, 열정의 진리, 부와 가난의 진리, 검소와 방탕의 진리, 조심스러움과 방종의 진리도 있었다. 백 가지, 천 가지가 진리였고 그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


  사람들을 괴상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진리였다. 이 문제에 대해 노인은 상당히 정교한 이론을 갖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진리를 취해서 자기 것이라 부르고 그것에 의해 살아가려 할 때 그는 괴상한 사람이 되고 그가 껴안은 진리는 거짓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상대주의는 손쉽다. 달콤하지만 무책임하다(= 온전한 응답이 아니다 ir-respon-sible). 체념이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야'라는 말은 그 자체로 '거짓'은 아니지만, '참'이기에는 불충분하다.


진리는 절대적이다. 이 절대성에서 하나냐 여럿이냐의 양자택일은 중요치 않다.

그런데 불행히도 진리의 절대성은 오랫동안 "여럿이 없는 하나"로, 그리고 외부적인 것으로 여겨져왔다.

사람들은 이 외삽의 공포를 피해 상대주의로 도피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도피일 뿐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진리를 무력화할 것이 아니라 절대성을 새롭게 사고해야한다.

외삽과 상대화는 각각이 향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진리를 무력화하다는 점에서는 같다.

똑같이 괴상하다. 



초超 단편소설을 읽고 문득 든 생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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