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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19 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 2011.05.17 Bruce Cockburn - Call It Democracy
- 2011.04.11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 2011.03.29 나는 아이리쉬 록 버전의 <잊을게>를 듣고 싶다 3
- 2011.02.15 늦은 일기 1
- 2011.02.04 좌충우돌 번역 일기 : 화면보호기로 투표를 한다고?? 1
- 2010.10.26 [발췌]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민음사)
- 2010.10.01 <연구공간 L> 1주년을 자축하며
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지필묵 2011. 5. 19. 01:17* 2008년 중앙대 사회학과 집담회를 위해 쓴 짤막한 글이다.
* 그때 나는 대학원수료생이었고, 지금 나는 논문제출기한을 넘겼는지 넘기기 직전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나는 1983년에 태어나 1999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다 1년 후 자퇴를 했고 2003년 또래보다 1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좌파적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학부시절을 보냈고, 졸업 직후 극우파들이 ‘빨갱이사관학교’라고 치켜세워주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2006년 4월에 소위 연구조교 생활을 시작했고, 그 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동안 학진의 녹을 먹었다. 그 사이에 영어시험과 종합시험과 프로포절 심사를 거쳤고, ‘준비중’이라는 대답만 1년 가까이 하면서 논문을 미뤄오다 요즘 겨우 마음을 잡았다. 2008년 11월 현재 나의 상태는 석사수료생. 예치금을 내야 책을 빌릴 수 있고, 늦어지는 논문 때문에 지도교수를 피하게 되고, ‘논문은 어떻게 돼 가냐’라는 질문과 ‘졸업하고 어떻게 할 생각이냐’라는 질문을 동시에 받는, 그러면서도 그것에 조금씩 무뎌져가는 대학원수료생이다. 이상이 ‘학문후속세대’로서의 나의 연대기이다.
그러나 모든 연대기에는 외전이 있는 법. 나는 대학원생으로 살아온 시간동안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논문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내가 남발했던 ‘준비중’이라는 대답은 사실 대부분 면피용이었다. 나는 프로포절 통과 후 논문을 쓰고도 남았을 1년이라는 시간동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논문의 참고문헌과 한참 동떨어진 『앙띠 외디푸스』를 강독했고, 영어가 아닌 에스페란토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또 죽었다 깨어나도 등재지가 될 수 없는(그리고 될 필요도 의지도 없는) 「자율평론」을 편집했고, 대항대학을 표방하는 <다중지성의 정원> 1을 함께 만들어 학생이자 강사이자 만사(만드는 사람)로 활동했다. 이처럼 나는 소위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동시에 경험했던 것이다. 2
여기서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구분을 사용하는 것은 양자를 경쟁시켜서 택일을 종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그 사이를 횡단하고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제도권에 적을 두고 있는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비제도권과 네트워킹되어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 간의 배타적인 구분이 극명해진 것은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부터이다.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대학에 대한 자본의 포섭과 훈육이 날로 심해지면서, 획일적인 지식생산구조(학부의 경우는 산학협력체제, 대학원의 경우는 학진체제)에 염증을 느낀 학문후속세대들이 비제도권 교육공간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지식인의 죽음’과 ‘떠오르는 대중지성’으로 부르며 대결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도권과 비제도권 사이에서의 배타적 택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인 지식생산구조 속에서 유실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말이다. 3
우리를 지칭하는 ‘학문후속세대’라는 용어는 사실 나에게 낯설면서도 불편한 표현이다.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에는 뭔가 유예되고 있는 듯한 느낌과 재생산에 대한 강박, 그리고 자조 섞인 동일시(identification)와 구별짓기(distinction)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학문후속세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학생’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띠는 모호성 때문일 것이다. 40년 전 유럽의 대학생들은 이미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투쟁의 모호함
학생으로서 가지는 우리의 조건은 특권자라는 사실이다. 대학 기구의 역할은 앞으로 우리를 유능한 지배의 조직자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대학은 이익 수단이다. 우리는 그 봉사의 댓가로서 간부가 되어 이 이익의 일부분을 분배받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학 개량 활동은 필연적으로 현대 사회의 착취를 강화시킨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 모순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4
대학은 졸업장 공장이다. (중략) 학생은 완성되어가는 생산품이며 대학과 사회의 관계란 원칙적으로 전혀 배제된 관계에 서 있다. 학생은 미래에 완성품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된다고 하는 점에서 지금은 사회의 일원일 수 없다.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학생을 사회의 계층적 상황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초월적 존재로 묶도록 근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모욕을 우리는 특권으로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 5
학생의 지위
현재 학생의 지위는 학생들에 의해 두 가지 결함이 지적되고 있다.
1. 학생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는 점
2. 학생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 학업은 교육서비스라는 형태로 생산된 가치를 단순히 소비하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또 다른 지적 가치를 생산하는 수업노동이다. 우리가 쓰는 발제문, 텀페이퍼, 나아가 학위논문을 생각해보라. 학교도 전공도 다른 사람의 논문에 인용되어 있는 자신의 논문,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블로그에 스크랩되어있는 자신의 글을 생각해보라. 더욱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가 수업시간에 나누는 토론, 발제문이나 책의 한 귀퉁이에 해 둔 메모조차도 우리의 사유 속에 남아 새로운 사유를 창조한다. 이처럼 우리의 수업노동은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노동을 하면서 우리가 받는 임금은 고작 학점과 학위이다. 우리는 오히려 1년에 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지불’해야 하며, 수업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한 생활비 역시 각자 해결해야한다. 학업의 교환가치화는 졸업 이후로 유예되어있거나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극도의 불안정노동 속에서만 구현된다. 6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나는 지적 노동을 주장함에 있어서 저작권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반동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가장 정교화한 것이 바로 등재지와 비등재지를 차별하는 학진과, 등재지 투고횟수와 SCI 지수를 점수로 환산하여 임용심사에 반영하는 대학이 아니던가. 이것이 낳은 결과는 ‘연구자가 아니라 논문기계가 되어버렸다’는 비참한 자아비판뿐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고립된 개인으로 사고하는 것과 맞서 싸워야한다. 우리의 노동을 사회적 노동이 아닌, 개인의 총명함이나 부지런함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와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면서 인용하는 무수한 지식들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 즉 수업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생산물은 결코 사적 소유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산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68혁명의 대학(원)생들처럼,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업노동자들의 파업처럼 사회적 임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야한다. 제한적인 장학금, 한시적인 프로젝트 지원이나 유토피아적인 안정적 고용전망과 같은 개인들 간의 경쟁의 산물이 아닌, 최소한의 보장소득으로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요구해야한다. 이것이야말로 공적자금에 대한 진정한 재전유이다. 가사노동을 위해 투쟁했던 선배들처럼 외쳐보자. 학생에게 임금을! 7
- http://jayul.net [본문으로]
- <다중지성의 정원>에 대해서는 취지문을 참조하라. (http://daziwon.ohpy.com/146491/1) [본문으로]
-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본문으로]
- 편집부, 『프랑스 5월 혁명』, 1985, 30쪽 [본문으로]
- 앞의 책, 31쪽 [본문으로]
- [/footnote]
구좌파 진영에서 굳이 68혁명을 쁘띠부르주아지의 혁명이라고 폄하하지 않았더라도, 혁명의 당사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모욕을 당하고 있는가. 학생이라는 지위, 학업이라는 활동은 과연 우리의 사회적 삶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는 구좌파의 의심어린 눈초리처럼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착취로부터 유예된 노동자로, 고등교육이라는 특혜를 받는 특권층으로, 혹은 아카데미라는 온실 속에서 ‘한창 좋을 때’를 누리고 있는 철없는 이등시민으로 너무 간단하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너무나 일면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표현으로, ‘수업노동’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수업노동은 보통 ‘학업’, ‘학교공부’ 등으로 번역되어왔던 스쿨워크(schoolwork)라는 단어를 재전유한 것이다.[footnote]Cleaver, Harry, “On Schoolwork and the Struggle Against It”, http://www.eco.utexas.edu/~hmcleave/ [본문으로]
-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안인 젤미니법이 맞물리면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 부모, 교사, 연구자들까지 시위에 동참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수업을 폐쇄한 채 야외수업과 자유토론이 벌이며 해방학교, 해방대학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은 riseup.net의 money banks crisis라는 메일링리스트에서 받은 이탈리아 소식의 일부이다. In october classes start in universities: a university student movement emerges powerfully: "We won't pay your crisis!" It's a loud and clear message that speaks of the here and now, of precarity, economic crisis and the last gasps of neoliberalism. "Cut resources to bankers and war missions, rather than to schools and universities! we are the coming society! We are not the problem, we are the solution!" (중략) Week by week the mov't grows: from elementary schools, teachers, parents, kids are united in denouncing the decree; high school collectives network their struggles; in universities researchers other precarious faculty and professors start joining student assemblies and discussing with student collectives. (중략) In the subsequent days, mobilizations further develop: in Milano, Torino and other cities dozens of motions to faculty boards, class blockades, assemblies, all-night events take place in freed universities. The first experiments with alternative higher education occur: academic lectures are held in central public squares before hundreds of students and curious citizens, wihle students speak of "free university and free knowledge". [본문으로]
Bruce Cockburn - Call It Democracy
흥얼흥얼 2011. 5. 17. 16:04메일링리스트 Money_Banks_Crisis에서 받아본 글.
메일제목이 'A Song for DSK'였는데 아마도 도미니끄 스트라우스-칸을 겨냥한 듯하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DSK 따위를 조롱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다니 좀 슬프다.
암튼 메일링리스트로 유통시켜준 분께 감사. :)
* Bruce Cockburn i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Bruce_Cockburn
Uploaded by tarkineWild on 11 Sep 2008
"Call it Democracy" is perhaps the only song ever written abou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hich Cockburn accuses of fostering "insupportable debt" in Third World countries. Typically not pulling any punches, Cockburn charges that the IMF doesn't "really give a flying fuck about the people in misery." That earned it a few bleeps on radio and video channels, but no one seemed to notice the chorus, "IMF, dirty MF." We won't spell out here what "MF" stands for, but it can easily be imagined."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NUDA POTENZA 2011. 4. 11. 02:43* 2년 전에 쓴 글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4월 1일.
오늘은 촛불 거시기(gxi, id, csa, it)가 있는 날이다.
아직 딱히 실천할 아이템이 없어서 경기교육감선거를 위한 피켓팅에 결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까페에 올라온 글 하나. 허세욱님 추모제 공지글.
맞어. 오늘이 그날이었지.
월요일날 용산추모제에서 한 분이 자유발언을 하면서 허세욱님을 소개+회고했었다.
그때 작년에 까맣게 잊고 넘어갔단 사실에 허탈했었는데...
며칠 사이 또 깜빡한거다. 난 진정 붕어인가. (붕어야 미안... ㅠ.ㅠ)
암튼 노선 급수정. 사당에서 같이 피켓팅하기로 한 분을 배신하고 하얏트 호텔로 갔다.
가기 전 대한문 지킴이님께 들러 초 3개를 받았다. 그리고 허접하지만 피켓도 만들었다.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2009. 4. 1"
이라고만 썼다.
2년 전 만우절날 벌어진 거짓말같은, 모두가 거짓말이길 바랐던 그 사건.
그날 저녁 동기 언니와 시청광장 집회에 가서 무대에 세워둔 스크린에 띄워진 자막을 보고 알았다.
"허세욱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대충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민노당 상근자 출신인 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잘 아는 분이었던 것.
집회 후 청와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피맛골 막걸리집에 자릴 잡았다.
거기서 언니는 그 분의 삶을 들려주었다. 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담배만 뻐끔뻐끔.
그러고보니 집으로 가면서 삼촌에게 취중문자를 보낸 것도 같다.
오늘 어느 분이 분신을 하셨는데 맘이 너무 아프다고...
퉁생이 삼촌은 역시나 답이 없었지만 속이 좀 풀렸던 것 같다.
2년 후 만우절날 나는 하얏트호텔로 갔다.
초 켜놓고 혼자서 노래나 읖조리다 오려고 했다.
그런데 국화 한 다발을 든 분(알고보니 까페 공지글을 올리신 분)이 계셨다.
현장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작년 1주기 때의 사진에 의지해 찾아야할 판이었는데,
그 분과 그 일행 덕분에 쉬이, 덜 춥게, 덜 외롭게 허세욱님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인간 허세욱을 잘 모른다. 그는 인간 그라쪼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한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그의 외침이 나의 외침인 한, 그 외침이 계속되는 한,
나는 '그'고, 그는 '나'다.
PS. 죽으면 허세욱님이 운전하시는 택시 한번 타보고 싶다. 오라이? 오라이!
나는 아이리쉬 록 버전의 <잊을게>를 듣고 싶다
사는 얘기 2011. 3. 29. 16:54지난 일요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나는 가수다>가 전파를 탔다. 프로그램의 만듦새도 그렇지만,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중간광고 없이 방송되는 걸 보니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제작진의 결의가 느껴졌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그것도 대중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된 상황에서 광고의 유혹을 뿌리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 않고 본방사수를 하고나서 든 느낌은 개운함보다는 찝찝함, 정확히 말하자면 서글픔이었다. 특히나 정엽의 탈락은 '의연하다', '쿨하다'라는 세간의 평가로 상쇄될 수 없는 서글픔을 안겨주었다. 탈락 자체가 서글플 것은 없다. 정엽 자신이 '이제 앨범 준비할 수 있겠다'고 말했듯, 이제 그 무겁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또 해야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 무엇이 날 서글프게 만들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탈락 자체가 아니라 탈락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정엽은 YB의 <잊을게>를 미션곡으로 받고 자신이 평소 도전해보고 싶었던 장르라고 밝혔다. 그리고 중간평가 때 아이리쉬 록 스타일로 편곡한 정엽의 <잊을게>가 공개되었다. 나는 '브라운 아이드 쏘울', 즉 한국적 (넓게는 아시아적) 쏘울의 대표주자인 정엽의 변신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의 공연은 다듬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구태의연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이승열만이 거의 유일하게 구현하고 있는, 윤도현이 말했듯 U2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리쉬 록 특유의 분위기가 정엽의 독특한 음색으로 빚어지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그러나 중간평가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게 아니라 '꼴찌'를 했다. 매니저 개그맨들이 위태로운 가수를 점찍으면서 일제히 정엽을 걱정한 것은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료가수들의 평가 역시, 청중으로서의 평가라기보다는 대중의 반응을 거의 무조건반사처럼 예측하게끔 훈련된 경험 많은 가수로서의 그것에 가까웠을 것 같다. '평소에 꼭 해보고 싶던 장르이지만 쉽지가 않다', '어설퍼지는 것 같다'고 토로하던 정엽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장르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가장 잘 하는'이라는 말은 뒤집으면 '늘 해왔던'이라는 뜻이 된다. 그의 공연을 보고 나는 너무나 속상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가수 정엽, 그 음색, 호흡, 테크닉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국내 최정상의 세션맨들과 악기, 음향장비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그의 공연은 무미건조했다. 그 공연을 보는 동안 내 머리 속에 그려진 것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결혼식 피로연 장면이었다. 상투적으로 로맨틱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싸이먼 코웰 식으로 얘기하면 호텔 라운지에서나 들을 법한 그런 공연이었다.
그리고 정엽은 '꼴찌'를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기왕에 떨어질 거 처음에 한 대로 아이리쉬 록 버전에 도전해볼 걸, 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는 왜 과감하게 '실험'을 하지 못한 걸까. 내가 느낀 서글픔은 여기에 있다.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도, 탈락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실험만을 허용하는 구도.
다른 가수들이 미션에 임하는 모습도 서글프긴 마찬가지였다. 중견가수 백지영이 리허설에서 머릿 속이 백지장이 되는 경험을 하고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해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국민가수 김건모가 마이크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이소라는 공연을 진행하면서 '잘 하는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음'을, 그것이 '경쟁을 통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글쎄, 난 너무 서글펐다. 마치 내가 쌔디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SM플레이를 끝낼 수 있을까.
김건모의 재도전 사태(?)로 일주일 내내 시끄러운 걸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다른 모든 뉴스들이 묻힐 정도로 이렇게 회자될 정도라면 그냥 써바이벌 형식을 버리고 공연만 하면 안되나, 라는 생각을. 물론 그것은 시청률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광고도 '완판'시켜야 하는 상업방송의 생리와는 맞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이 그다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가수다>의 핵심 컨셉 중 부정적인 측면인 '써바이벌'을 버리고 긍정적인 측면인 '미션'만 취하면 어떨까. 시즌제를 도입해서 7명이 한 시즌을 지지고 볶으며 실컷 놀고, 다음 시즌에는 또 다른 7명이 새 시즌을 꾸려나가는 방식은 어떨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역사가 쌓여서 10주년 리유니온 같은 걸 하면 어떨까.
나는 떠난 정엽을 비롯한 7인의 가수에게 아직도 듣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팝을 부르는 것도 듣고 싶고, OST를 부르는 것도 듣고 싶다. 팀을 짜서 콜라보레이션 배틀을 하는 것도 보고 싶고, 자기 음반의 B side를 소개하는 것도, 내 인생의 노래를 소개하는 것도 보고 싶다. 진짜 파격은 165분 편성이나 써바이벌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작진이 자부하던 공연의 질 자체에 있다. 탈락이라고 표현하든 양보라고 표현하든 누군가가 '아웃'됨으로써 담보되는 질이 아니라, 가수의 자유롭고 새로운 실험을 통해 담보되는 질 말이다.
이런 파격을 꿈꾸며 한 달을 기다려보련다. 어떤 형식으로 재정비되든 첫 무대는 정엽의 <잊을게> 아이리쉬 록 버전이었면 좋겠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풀 버전은 듣고 보내야지.
늦은 일기
NUDA POTENZA 2011. 2. 15. 07:11좌충우돌 번역 일기 : 화면보호기로 투표를 한다고??
사는 얘기 2011. 2. 4. 19:58연구공간 L은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관한 편역서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나름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그중 닉 다이어-위데포드(Nick Dyer-Witheford)의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이라는 글은 예외적으로 서진과 내가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부분과 맞닥뜨렸다.
나는 (1)을 <개인들의 서툰 컴퓨터 사용/회전에서 나오는 무수히 많은 특이한 기여들>이라고 옮겼다. unused라는 단어는 일차적으로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unused to sth 혹은 unused to doing sth의 형태로 사용할 때 ‘~에 익숙하지 않은/경험이 많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는다. 나는 ‘사용 중이지 않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to (doing) sth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음에도 <개인들의 서툰 컴퓨터 사용>이라는 번역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택했다. 나는, 개인들의 컴퓨터 사용능력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같은 문단에서 언급되고 있는) “엄청난 계산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들”에 비해서는 조야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조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인적인 사용들이 이룬 cycle이 알게 모르게 기여하는 바가 있나보다, 라고 막연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2)였다. 도대체 화면보호기로 무슨 투표를 한다는 건가. ㅠ.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내용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뒷문장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번역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막막함과 괴로움 ㅡ.ㅡ 을 나의 번역파트너이자 멘토인 서진과 공유했다. 늘 내 부족한 실력을 메워주던 서진도 이번에는 난색을 표했다. 둘이서 머리를 싸매도 딱히 진전이 없었다. 맥락이 있을텐데, 뭔가 있을텐데, 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점점 지쳐가던 우리는 그간 숱한 오탈자와 비문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저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위데포드 지못미.. 그치만 당신이 한 짓도 만만치 않아.. ㅋㅋ)
그런데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여 뭔가를 부지런히 검색하던 이부장님이 얼마 후 자기 노트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우리의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거슨 SETI@home(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home(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은 SETI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분산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여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들을 이용해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1999년 5월 17일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버클리 네트워크 컴퓨팅을 위한 공개 기반(BOINC) 플랫폼에 속해 있다.
SETI의 기본 개념은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행성의 주파수 대역의 신호를 분석하여 특정한 반복 패턴을 보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전파 신호를 가려내는 것이다. SETI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 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SETI의 전신인 오즈마 계획은 1960년대 부터 시작되었지만 50년 가까이 아무런 외계 지성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계로부터의 신호는 전파망원경으로 수신한다.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전파 신호 속에는 별의 탄생이나 블랙홀에서 나오는 호킹 복사 등 온갖 자연의 전파가 포함돼 있다. 여기서 인공적인 전파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높은 연산 능력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게 된다. SETI@home은 전 세계에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가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슈퍼컴퓨터의 역할을 하여 신호를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세티 프로젝트(Search for Exteraterristrial Intelligence, SETI Project)에 대한 미 의회에서의 결정으로 국가 예산으로의 지원이 중단됨에 따라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하여 단일 혹은 소수의 대용량 컴퓨터로 하는 분석이 아닌 전 세계에서 유휴중인 컴퓨터 자원을 활용하여 분석을 지속하기 위하여 분산 컴퓨팅(Distributed Computing)의 형태인 "@home(At Home, 집에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가 있다면 누구나 무료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실행시킴으로써 SETI@home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 개인용 컴퓨터의 CPU, 디스크 공간, 네트워크 대역폭의 일부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때 화면보호기의 형태로 작동하며, 사용자가 자원의 사용 정도를 설정할 수 있다. 또는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화면보호기를 끄고 백그라운드로 작업을 진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BOINC 기반 프로젝트들>
생물학
- Cells@Home - 질병의 전이에 대한 연구.
- 말라리아 통제 — 말라리아의 역학적인 확률론적 분석과 자연에서의 말라리아의 역사연구.
- POEM@Home - 앤핀선의 도그마를 이용한 단백질 접이 모델.
- Rosetta@home — 단백질 구조에 대해서 예측하고,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 SIMAP — 분산 컴퓨팅을 이용한 연속적인 유사성이 있는 단백질 데이터베이스 구축 프로젝트.
- TANPAKU — 브라운 이론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 World Commnuity Grid - BOINC를 이용한 여러 생물학 관련(에이즈 치료, 단백질 접힘, 뎅기열 치료)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지구 과학
- Climateprediction.net — 21세기의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서 시도중인 프로젝트.
물리학 & 천문학
- BRaTS@Home — 중력렌즈 연구.
- Einstein@Home — LIGO와 GEO 600을 이용한 중력장 검출.
- LHC@home — CERN의 거대 하드론 충돌기(Large Hardron Collider, LHC)에서 움직이는 입자를 시뮬레이션하는 프로젝트.
- QMC@Home — 양자 몬테 카를로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분자구조와 분자의 반응성을 예측.
- SETI@home —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
수학 [편집]
- ABC@Home — ABC 추측문제의 풀이를 시도.
- SZTAKI Desktop Grid — 이진수를 귀납할수 있는 방법을 찾는 프로젝트.
- TSP - 외판원 문제의 연구
출처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SETI@home
이 내용을 알게 되자 ‘화면보호기로 어떤 프로젝트를 지지할지 투표한다’는 표현은 더 이상 외계어가 아니었다. 그래, 세상에 이런 게 있었어. ㅠ.ㅠ 우리는 우리의 무식함에 치를 떨면서 폭풍반성을 했다. 맨날 책이나 읽지 이런 건 하나도 모른다며... ㅋ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나름 만족스런 번역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다듬어야할 부분이 있겠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을 맞았다.
번역은 해당언어사전만으로 불가능하다는, 너무 당연하지만 자주 간과하게 되는 교훈을 되새기며. :P
thanks to 서진
special thanks to 종호 a.k.a. 이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