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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7 [웹자보] 5회 맑꼼 기본소득 세션, 6월 3일 10~15시, 서울대 6-108
  2. 2011.05.25 [리플렛] 제5회 맑스꼬뮤날레 <현대자본주의와 생명> 6월 2~4일, 서울대
  3. 2011.05.19 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4. 2011.05.17 Bruce Cockburn - Call It Democracy
  5. 2011.04.11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6. 2011.03.29 나는 아이리쉬 록 버전의 <잊을게>를 듣고 싶다 3
  7. 2011.02.15 늦은 일기 1
  8. 2011.02.04 좌충우돌 번역 일기 : 화면보호기로 투표를 한다고?? 1
  9. 2010.10.26 [발췌]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민음사)
  10. 2010.10.01 <연구공간 L> 1주년을 자축하며

[웹자보] 5회 맑꼼 기본소득 세션, 6월 3일 10~15시, 서울대 6-108

뚝딱뚝딱 2011. 5. 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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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렛] 제5회 맑스꼬뮤날레 <현대자본주의와 생명> 6월 2~4일, 서울대

뚝딱뚝딱 2011. 5. 2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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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지필묵 2011. 5. 19. 01:17

* 2008년 중앙대 사회학과 집담회를 위해 쓴 짤막한 글이다.
* 그때 나는 대학원수료생이었고, 지금 나는 논문제출기한을 넘겼는지 넘기기 직전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학생에게 임금을! : 학문후속세대에서 수업노동자로

 



  나는 1983년에 태어나 1999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다 1년 후 자퇴를 했고 2003년 또래보다 1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다. 학생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좌파적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학부시절을 보냈고, 졸업 직후 극우파들이 ‘빨갱이사관학교’라고 치켜세워주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2006년 4월에 소위 연구조교 생활을 시작했고, 그 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2년 동안 학진의 녹을 먹었다. 그 사이에 영어시험과 종합시험과 프로포절 심사를 거쳤고, ‘준비중’이라는 대답만 1년 가까이 하면서 논문을 미뤄오다 요즘 겨우 마음을 잡았다. 2008년 11월 현재 나의 상태는 석사수료생. 예치금을 내야 책을 빌릴 수 있고, 늦어지는 논문 때문에 지도교수를 피하게 되고, ‘논문은 어떻게 돼 가냐’라는 질문과 ‘졸업하고 어떻게 할 생각이냐’라는 질문을 동시에 받는, 그러면서도 그것에 조금씩 무뎌져가는 대학원수료생이다. 이상이 ‘학문후속세대’로서의 나의 연대기이다.  

  그러나 모든 연대기에는 외전이 있는 법. 나는 대학원생으로 살아온 시간동안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다시 논문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내가 남발했던 ‘준비중’이라는 대답은 사실 대부분 면피용이었다. 나는 프로포절 통과 후 논문을 쓰고도 남았을 1년이라는 시간동안 ‘딴 짓’을 하고 있었다. 논문의 참고문헌과 한참 동떨어진 『앙띠 외디푸스』를 강독했고, 영어가 아닌 에스페란토와 라틴어를 공부했다. 또 죽었다 깨어나도 등재지가 될 수 없는(그리고 될 필요도 의지도 없는) 「자율평론」[각주:1]을 편집했고, 대항대학을 표방하는 <다중지성의 정원>[각주:2]을 함께 만들어 학생이자 강사이자 만사(만드는 사람)로 활동했다. 이처럼 나는 소위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동시에 경험했던 것이다.

  여기서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구분을 사용하는 것은 양자를 경쟁시켜서 택일을 종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날 그 사이를 횡단하고 있는 학문후속세대의 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제도권에 적을 두고 있는 많은 학문후속세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비제도권과 네트워킹되어있다. 제도권과 비제도권 간의 배타적인 구분이 극명해진 것은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부터이다. 신자유주의화와 함께 대학에 대한 자본의 포섭과 훈육이 날로 심해지면서, 획일적인 지식생산구조(학부의 경우는 산학협력체제, 대학원의 경우는 학진체제)에 염증을 느낀 학문후속세대들이 비제도권 교육공간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지식인의 죽음’과 ‘떠오르는 대중지성’으로 부르며 대결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각주:3]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도권과 비제도권 사이에서의 배타적 택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신자유주의적인 지식생산구조 속에서 유실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말이다. 

  우리를 지칭하는 ‘학문후속세대’라는 용어는 사실 나에게 낯설면서도 불편한 표현이다. 학문후속세대라는 말에는 뭔가 유예되고 있는 듯한 느낌과 재생산에 대한 강박, 그리고 자조 섞인 동일시(identification)와 구별짓기(distinction)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학문후속세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학생’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띠는 모호성 때문일 것이다. 40년 전 유럽의 대학생들은 이미 이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투쟁의 모호함

학생으로서 가지는 우리의 조건은 특권자라는 사실이다. 대학 기구의 역할은 앞으로 우리를 유능한 지배의 조직자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다. 대학은 이익 수단이다. 우리는 그 봉사의 댓가로서 간부가 되어 이 이익의 일부분을 분배받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학 개량 활동은 필연적으로 현대 사회의 착취를 강화시킨다. 때문에 우리는 자기 모순의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각주:4] 


대학은 졸업장 공장이다. (중략) 학생은 완성되어가는 생산품이며 대학과 사회의 관계란 원칙적으로 전혀 배제된 관계에 서 있다. 학생은 미래에 완성품으로서 사회의 일원이 된다고 하는 점에서 지금은 사회의 일원일 수 없다. ‘미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학생을 사회의 계층적 상황으로부터 배제시키고, 초월적 존재로 묶도록 근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모욕을 우리는 특권으로 감사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런가.[각주:5]


학생의 지위

현재 학생의 지위는 학생들에 의해 두 가지 결함이 지적되고 있다.

1. 학생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는 점

2. 학생이 고립되어 있다는 점[각주:6] 학업은 교육서비스라는 형태로 생산된 가치를 단순히 소비하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또 다른 지적 가치를 생산하는 수업노동이다. 우리가 쓰는 발제문, 텀페이퍼, 나아가 학위논문을 생각해보라. 학교도 전공도 다른 사람의 논문에 인용되어 있는 자신의 논문,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블로그에 스크랩되어있는 자신의 글을 생각해보라. 더욱 미시적으로 보면 우리가 수업시간에 나누는 토론, 발제문이나 책의 한 귀퉁이에 해 둔 메모조차도 우리의 사유 속에 남아 새로운 사유를 창조한다. 이처럼 우리의 수업노동은 인류의 지식과 정보를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노동을 하면서 우리가 받는 임금은 고작 학점과 학위이다. 우리는 오히려 1년에 천만 원에 달하는 학비를 ‘지불’해야 하며, 수업노동을 재생산하기 위한 생활비 역시 각자 해결해야한다. 학업의 교환가치화는 졸업 이후로 유예되어있거나 아르바이트라고 불리는 극도의 불안정노동 속에서만 구현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나는 지적 노동을 주장함에 있어서 저작권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반동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가장 정교화한 것이 바로 등재지와 비등재지를 차별하는 학진과, 등재지 투고횟수와 SCI 지수를 점수로 환산하여 임용심사에 반영하는 대학이 아니던가. 이것이 낳은 결과는 ‘연구자가 아니라 논문기계가 되어버렸다’는 비참한 자아비판뿐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고립된 개인으로 사고하는 것과 맞서 싸워야한다. 우리의 노동을 사회적 노동이 아닌, 개인의 총명함이나 부지런함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와 맞서 싸워야 한다. 우리가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하면서 인용하는 무수한 지식들을 떠올려보라. 우리가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 즉 수업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생산물은 결코 사적 소유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산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68혁명의 대학(원)생들처럼,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업노동자들의 파업[각주:7]처럼 사회적 임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야한다. 제한적인 장학금, 한시적인 프로젝트 지원이나 유토피아적인 안정적 고용전망과 같은 개인들 간의 경쟁의 산물이 아닌, 최소한의 보장소득으로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요구해야한다. 이것이야말로 공적자금에 대한 진정한 재전유이다. 가사노동을 위해 투쟁했던 선배들처럼 외쳐보자. 학생에게 임금을!




  1. http://jayul.net [본문으로]
  2. <다중지성의 정원>에 대해서는 취지문을 참조하라. (http://daziwon.ohpy.com/146491/1) [본문으로]
  3.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후마니타스, 2008. [본문으로]
  4. 편집부, 『프랑스 5월 혁명』, 1985, 30쪽 [본문으로]
  5. 앞의 책, 31쪽 [본문으로]
  6. [/footnote]


      구좌파 진영에서 굳이 68혁명을 쁘띠부르주아지의 혁명이라고 폄하하지 않았더라도, 혁명의 당사자들은 이미 자신들의 지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모욕을 당하고 있는가. 학생이라는 지위, 학업이라는 활동은 과연 우리의 사회적 삶을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가. 우리는 구좌파의 의심어린 눈초리처럼 우리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착취로부터 유예된 노동자로, 고등교육이라는 특혜를 받는 특권층으로, 혹은 아카데미라는 온실 속에서 ‘한창 좋을 때’를 누리고 있는 철없는 이등시민으로 너무 간단하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너무나 일면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표현으로, ‘수업노동’이라는 다소 낯선 용어를 제시하고자 한다. 수업노동은 보통 ‘학업’, ‘학교공부’ 등으로 번역되어왔던 스쿨워크(schoolwork)라는 단어를 재전유한 것이다.[footnote]Cleaver, Harry, “On Schoolwork and the Struggle Against It”, http://www.eco.utexas.edu/~hmcleave/ [본문으로]

  7. 최근 이탈리아에서는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안인 젤미니법이 맞물리면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물론, 부모, 교사, 연구자들까지 시위에 동참하고 있으며, 공식적인 수업을 폐쇄한 채 야외수업과 자유토론이 벌이며 해방학교, 해방대학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은 riseup.net의 money banks crisis라는 메일링리스트에서 받은 이탈리아 소식의 일부이다. In october classes start in universities: a university student movement emerges powerfully: "We won't pay your crisis!" It's a loud and clear message that speaks of the here and now, of precarity, economic crisis and the last gasps of neoliberalism. "Cut resources to bankers and war missions, rather than to schools and universities! we are the coming society! We are not the problem, we are the solution!" (중략) Week by week the mov't grows: from elementary schools, teachers, parents, kids are united in denouncing the decree; high school collectives network their struggles; in universities researchers other precarious faculty and professors start joining student assemblies and discussing with student collectives. (중략) In the subsequent days, mobilizations further develop: in Milano, Torino and other cities dozens of motions to faculty boards, class blockades, assemblies, all-night events take place in freed universities. The first experiments with alternative higher education occur: academic lectures are held in central public squares before hundreds of students and curious citizens, wihle students speak of "free university and free knowledge". [본문으로]
:

Bruce Cockburn - Call It Democracy

흥얼흥얼 2011. 5. 17. 16:04


메일링리스트 Money_Banks_Crisis에서 받아본 글.
메일제목이 'A Song for DSK'였는데 아마도 도미니끄 스트라우스-칸을 겨냥한 듯하다.
이렇게 좋은 노래가 DSK 따위를 조롱하는 데 사용되어야 하다니 좀 슬프다.
암튼 메일링리스트로 유통시켜준 분께 감사. :)
 
* Bruce Cockburn i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Bruce_Cockburn



Uploaded by  on 11 Sep 2008

"Call it Democracy" is perhaps the only song ever written about the International Monetary Fund, which Cockburn accuses of fostering "insupportable debt" in Third World countries. Typically not pulling any punches, Cockburn charges that the IMF doesn't "really give a flying fuck about the people in misery." That earned it a few bleeps on radio and video channels, but no one seemed to notice the chorus, "IMF, dirty MF." We won't spell out here what "MF" stands for, but it can easily be imagined."





Padded with power here they come
International loan sharks backed by the guns
Of market hungry military profiteers
Whose word is a swamp and whose brow is smeared
With the blood of the poor

Who rob life of its quality
Who render rage a necessity
By turning countries into labour camps
Modern slavers in drag as champions of freedom

Sinister cynical instrument
Who makes the gun into a sacrament --
The only response to the deification
Of tyranny by so-called "developed" nations'
Idolatry of ideology

North South East West
Kill the best and buy the rest
It's just spend a buck to make a buck
You don't really give a flying fuck
About the people in misery

IMF dirty MF
Takes away everything it can get
Always making certain that there's one thing left
Keep them on the hook with insupportable debt

See the paid-off local bottom feeders
Passing themselves off as leaders
Kiss the ladies shake hands with the fellows
Open for business like a cheap bordello

And they call it democracy
And they call it democracy
And they call it democracy
And they call it democracy

See the loaded eyes of the children too
Trying to make the best of it the way kids do
One day you're going to rise from your habitual feast
To find yourself staring down the throat of the beast
They call the revolution

IMF dirty MF
Takes away everything it can get
Always making certain that there's one thing left
Keep them on the hook with insupportable debt

 

: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NUDA POTENZA 2011. 4. 11. 02:43


* 2년 전에 쓴 글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4월 1일.

오늘은 촛불 거시기(gxi, id, csa, it)가 있는 날이다.

아직 딱히 실천할 아이템이 없어서 경기교육감선거를 위한 피켓팅에 결합하기로 했다.

그런데 까페에 올라온 글 하나. 허세욱님 추모제 공지글.

 


 

맞어. 오늘이 그날이었지.

월요일날 용산추모제에서 한 분이 자유발언을 하면서 허세욱님을 소개+회고했었다.

그때 작년에 까맣게 잊고 넘어갔단 사실에 허탈했었는데...

며칠 사이 또 깜빡한거다. 난 진정 붕어인가. (붕어야 미안... ㅠ.ㅠ)

 

암튼 노선 급수정. 사당에서 같이 피켓팅하기로 한 분을 배신하고 하얏트 호텔로 갔다.

가기 전 대한문 지킴이님께 들러 초 3개를 받았다. 그리고 허접하지만 피켓도 만들었다.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가 그냥,

"허세욱님 당신을 기억합니다 2009. 4. 1" 


이라고만 썼다.  

 

2년 전 만우절날 벌어진 거짓말같은, 모두가 거짓말이길 바랐던 그 사건.

그날 저녁 동기 언니와 시청광장 집회에 가서 무대에 세워둔 스크린에 띄워진 자막을 보고 알았다.

"허세욱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대충 이런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민노당 상근자 출신인 언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잘 아는 분이었던 것.

 



집회 후 청와대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피맛골 막걸리집에 자릴 잡았다. 

거기서 언니는 그 분의 삶을 들려주었다. 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담배만 뻐끔뻐끔.

그러고보니 집으로 가면서 삼촌에게 취중문자를 보낸 것도 같다.

오늘 어느 분이 분신을 하셨는데 맘이 너무 아프다고...

퉁생이 삼촌은 역시나 답이 없었지만 속이 좀 풀렸던 것 같다. 

 

2년 후 만우절날 나는 하얏트호텔로 갔다.

초 켜놓고 혼자서 노래나 읖조리다 오려고 했다.

그런데 국화 한 다발을 든 분(알고보니 까페 공지글을 올리신 분)이 계셨다.

현장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작년 1주기 때의 사진에 의지해 찾아야할 판이었는데,

그 분과 그 일행 덕분에 쉬이, 덜 춥게, 덜 외롭게 허세욱님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인간 허세욱을 잘 모른다. 그는 인간 그라쪼를 전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한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그의 외침이 나의 외침인 한, 그 외침이 계속되는 한,

나는 '그'고, 그는 '나'다. 

 

 

PS. 죽으면 허세욱님이 운전하시는 택시 한번 타보고 싶다. 오라이? 오라이!

 

:

나는 아이리쉬 록 버전의 <잊을게>를 듣고 싶다

사는 얘기 2011. 3. 29. 16:54

지난 일요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나는 가수다>가 전파를 탔다. 프로그램의 만듦새도 그렇지만, 2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중간광고 없이 방송되는 걸 보니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제작진의 결의가 느껴졌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그것도 대중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된 상황에서 광고의 유혹을 뿌리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꼼짝 않고 본방사수를 하고나서 든 느낌은 개운함보다는 찝찝함, 정확히 말하자면 서글픔이었다. 특히나 정엽의 탈락은 '의연하다', '쿨하다'라는 세간의 평가로 상쇄될 수 없는 서글픔을 안겨주었다. 탈락 자체가 서글플 것은 없다. 정엽 자신이 '이제 앨범 준비할 수 있겠다'고 말했듯, 이제 그 무겁던 짐을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또 해야할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럼 무엇이 날 서글프게 만들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탈락 자체가 아니라 탈락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정엽은 YB의 <잊을게>를 미션곡으로 받고 자신이 평소 도전해보고 싶었던 장르라고 밝혔다. 그리고 중간평가 때 아이리쉬 록 스타일로 편곡한 정엽의 <잊을게>가 공개되었다. 나는 '브라운 아이드 쏘울', 즉 한국적 (넓게는 아시아적) 쏘울의 대표주자인 정엽의 변신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의 공연은 다듬어지지는 않았을지언정 구태의연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이승열만이 거의 유일하게 구현하고 있는, 윤도현이 말했듯 U2를 떠올리게 하는, 아이리쉬 록 특유의 분위기가 정엽의 독특한 음색으로 빚어지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그러나 중간평가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좋지 못한 게 아니라 '꼴찌'를 했다. 매니저 개그맨들이 위태로운 가수를 점찍으면서 일제히 정엽을 걱정한 것은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료가수들의 평가 역시, 청중으로서의 평가라기보다는 대중의 반응을 거의 무조건반사처럼 예측하게끔 훈련된 경험 많은 가수로서의 그것에 가까웠을 것 같다. '평소에 꼭 해보고 싶던 장르이지만 쉽지가 않다', '어설퍼지는 것 같다'고 토로하던 정엽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장르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가장 잘 하는'이라는 말은 뒤집으면 '늘 해왔던'이라는 뜻이 된다. 그의 공연을 보고 나는 너무나 속상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가수 정엽, 그 음색, 호흡, 테크닉은 모두 그대로였지만, 국내 최정상의 세션맨들과 악기, 음향장비도 모두 그대로였지만, 그의 공연은 무미건조했다. 그 공연을 보는 동안 내 머리 속에 그려진 것은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나오는 결혼식 피로연 장면이었다. 상투적으로 로맨틱한, <아메리칸 아이돌>의 싸이먼 코웰 식으로 얘기하면 호텔 라운지에서나 들을 법한 그런 공연이었다.  

그리고 정엽은 '꼴찌'를 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기왕에 떨어질 거 처음에 한 대로 아이리쉬 록 버전에 도전해볼 걸, 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는 왜 과감하게 '실험'을 하지 못한 걸까. 내가 느낀 서글픔은 여기에 있다.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도, 탈락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실험만을 허용하는 구도.   

다른 가수들이 미션에 임하는 모습도 서글프긴 마찬가지였다. 중견가수 백지영이 리허설에서 머릿 속이 백지장이 되는 경험을 하고는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해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국민가수 김건모가 마이크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이소라는 공연을 진행하면서 '잘 하는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음'을, 그것이 '경쟁을 통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글쎄, 난 너무 서글펐다. 마치 내가 쌔디스트가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SM플레이를 끝낼 수 있을까.

김건모의 재도전 사태(?)로 일주일 내내 시끄러운 걸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다른 모든 뉴스들이 묻힐 정도로 이렇게 회자될 정도라면 그냥 써바이벌 형식을 버리고 공연만 하면 안되나, 라는 생각을. 물론 그것은 시청률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광고도 '완판'시켜야 하는 상업방송의 생리와는 맞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이 그다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가수다>의 핵심 컨셉 중 부정적인 측면인 '써바이벌'을 버리고 긍정적인 측면인 '미션'만 취하면 어떨까. 시즌제를 도입해서 7명이 한 시즌을 지지고 볶으며 실컷 놀고, 다음 시즌에는 또 다른 7명이 새 시즌을 꾸려나가는 방식은 어떨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역사가 쌓여서 10주년 리유니온 같은 걸 하면 어떨까.

나는 떠난 정엽을 비롯한 7인의 가수에게 아직도 듣고 싶은 게 너무나 많다. 팝을 부르는 것도 듣고 싶고, OST를 부르는 것도 듣고 싶다. 팀을 짜서 콜라보레이션 배틀을 하는 것도 보고 싶고, 자기 음반의 B side를 소개하는 것도, 내 인생의 노래를 소개하는 것도 보고 싶다. 진짜 파격은 165분 편성이나 써바이벌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작진이 자부하던 공연의 질 자체에 있다. 탈락이라고 표현하든 양보라고 표현하든 누군가가 '아웃'됨으로써 담보되는 질이 아니라, 가수의 자유롭고 새로운 실험을 통해 담보되는 질 말이다.

이런 파격을 꿈꾸며 한 달을 기다려보련다. 어떤 형식으로 재정비되든 첫 무대는 정엽의 <잊을게> 아이리쉬 록 버전이었면 좋겠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풀 버전은 듣고 보내야지. 



:

늦은 일기

NUDA POTENZA 2011. 2. 15. 07:11

부산에서 맞는 일요일.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고향집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보수동 책방골목이 나온다.
(동네이름이 보수동이라니... 부산에 살 땐 너무나 익숙해서 몰랐는데 지금은 좀 징그럽다.)
1박2일에서 이승기가 다녀갔다더니 그래서일까. DSLR을 둘러멘 사람들이 꽤 보였다.

책 몇 권을 사고 국제시장을 가로질러 자갈치시장으로 갔다. 
표지판 노선도에 한진중공업이라고 적혀있는 버스는 30번과 66번이다.
한진중공업이 워낙 규모가 큰 곳이라 태종대행 버스는 모두다 들르지 싶었지만,
어느새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된 나는 그냥 안전하게, 혹은 소심하게 정류장 이름이 노출된 버스를 기다렸다.

십수대의 버스를 보내고 드디어 30번 버스에 올랐다. 
변함없이 터프한 부산 버스를 몸을 싣고 영도다리를 건넌다.
신공항 유치를 위한 현수막이 부산 시내에 빼곡하더니만 영도도 예외가 아니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에 섰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차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대학 1학년 때가 생각났다.
2003년, 부산으로 놀러온 동아리 사람들과 태종대에 갔다오던 길. 휘날리던 붉은 깃발과 울려퍼지던 쟁가.
그리고 피서객의 모습을 하고서 그 광경이, 그 소리가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던 나.
'체제순응적'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운동권'은 아닌, 
'좌파', '저항', 'ㅈ같은 자본주의', 뭐 이런 눈곱만큼의 감수성만 갖고 있던 시절의 나. 

횡단보도를 건너니 약간 살벌한 광경이 펼쳐졌다.
회사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25인승 정도 될 법한 버스는 유리창이 모두 박살나 있었던 것.
차마 그 모습을 찍진 못하고 건너편 건물을 찍는데, 경비아저씨가 보안 때문에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그때는 약간 아니꼬왔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아저씨의 태도는 생각보다 상당히 상냥했다.)

  


'아, 네.'

대충 끄덕이고 고개를 돌리니 경비실 앞에 삼삼오오 불을 쬐는 분들이 보인다. 
근데 사수대인지 구사대인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난감해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누가 봐도 소위 '외부인' 같은 젊은 남녀가 통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어떻게 좀 껴서 들어가보려고 인사를 했다. 

'서울에서 온 학생인데요. 고향 내려왔다가, 어쩌고 저쩌고...'
'아, 저희도 통화해보고 있어요.'

출입절차는 민망할 정도로 간단했다. 그냥 출입기록만 작성하면 되는 거였다. 
(그래도 소속에 연구공간 L이라고 당당하게 기록했다.)
함께 들어간 분들은 민노당 <진보정치> 기자분들이었다. 
(그러고보니 통성명도 못하고...)
당원도 아니고 단체회원도 아니고 그냥 혼자 왔다고 하니까 약간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괜찮다. 이제는 익숙하다.)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가자 농성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전기를 들고 뛰어다니던 꼬마 아이들이 다부진 억양으로 갑자기 말을 건다.

'용화상이 뭐에요?'
'응? 용화상?'

아빠가 뭔가를 알려줬나본데 무전이라 잘 못 들은 것 같았다. 한 아이가 무전기 너머에 있는 아빠에게 재차 묻는다. 

'용화상이 뭐야?'
'영화 틀어주니까 가라고.'
'영화? 우와!'

아이들은 신이 나서 어디론가 뛰어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평택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젠 이름도 가물가물한 아이들.. 많이 컸겠지.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친구도 있겠구나.

농성장을 메운 현수막과 자보, 띠, 편지들은 마치 악귀를 막아주는 금줄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한쪽에는 사수대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아, 김진숙님이 자랑하던 군고매가 저기서 구워졌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크레인.



크레인을 보자마자 숨이 탁 막혔다. 
어찌나 높은지 어지간히 뒤로 물러나지 않으면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김진숙님이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안됐다.
기자라면 이것저것 물어라도 보겠지만, 
듣보잡 시민? 학생! 트위테리안! 삶정치적 활동가!!인 나는 그마저도 너무나 조심스럽다.
그냥 쥐죽은 듯이 글귀들을 읽어나갔다. 



제발로 내려가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잠그고 올라온 문이지만 제 힘으론 저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제가 걸어내려가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
여러분들은 문 여는 법을 잊지 말아주세요.




글로 감동주지 못하고
말로 감동주지 못해요
그냥 이 자리 말없이 지켜나갈게요 ^^
사랑해요 아주 많이 ^^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겠다 싶어 다가갔다. 
그래, 제일 만만한 게 학생이고 트위테리안이다. (삶정치적 활동가는 너무나 많은 맥락을 요하니까..)
아까처럼 '서울에서 공부하는 학생인데 고향에 왔다가 와봤어요'라며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한 분이 '트위터에서 보셨어예?'라고 묻는다.
'네, 트위터에서 소식 접하고 있어요. 물 드시기 시작한 것도 트위터에서 보고 알았어요.'
다른 분은 막걸리를 권하시고, 또 다른 분은 쏘세지를 권하신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숫기 부족으로 먹진 못했다.)

저녁에 문화제가 예정되어있어지만,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이만 가보겠다고 죄송하다고, 대신 트위터로든 뭐로든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진보정치> 기자분들께도 인사를 드리는데 인터뷰 해주시던 분(아마도 노조간부)이 저녁 먹고 가라고 하신다. 
나는 숫기 부족과 시간 부족으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억수로 맛있는데... 나는 분명히 대접할라캤다'며 농을 던지셔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나는 속으로,
'얼른 좋은 날 와서 숫기고 나발이고 벗어던지고 막걸리며, 쏘세지며, 군고매며 편하게 먹고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인사했다.






건너편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나오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년남성들이 야광봉 같은 걸 들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함께 건너던 영도 주민들이 수군거렸다. 

한진중공업은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또 다른 2명의 노동자가 크레인에 올랐다. 

그리고 폭설이 왔다.




:

좌충우돌 번역 일기 : 화면보호기로 투표를 한다고??

사는 얘기 2011. 2. 4. 19:58

연구공간 L은 공통적인 것(the common)에 관한 편역서를 준비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나름 대규모 프로젝트인데, 그중 닉 다이어-위데포드(Nick Dyer-Witheford)의 "The Circulation of the Common"이라는 글은 예외적으로 서진과 내가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도.저.히.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부분과 맞닥뜨렸다. 


Some of the most dramatic implications of this networked socialization of production tools bear on the new terrestrial commons of eco- and bio-spherical concerns. Large scale research projects such as the 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global warming and climate change prediction and epidemic control, requiring vast calculative capacities, are being realised through (1)the myriad singular donations of unused computing cycles from individuals. Adopted on a very large scale, (2)this would amount to voting with one screensaver as to which programs of research to support ― a massive re-socialization of collective knowledge, an exercise of general intellect.


나는 (1)을 <개인들의 서툰 컴퓨터 사용/회전에서 나오는 무수히 많은 특이한 기여들>이라고 옮겼다. unused라는 단어는 일차적으로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는다. 그리고 unused to sth 혹은 unused to doing sth의 형태로 사용할 때 ‘~에 익숙하지 않은/경험이 많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는다. 나는 ‘사용 중이지 않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to (doing) sth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음에도 <개인들의 서툰 컴퓨터 사용>이라는 번역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택했다. 나는, 개인들의 컴퓨터 사용능력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같은 문단에서 언급되고 있는) “엄청난 계산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들”에 비해서는 조야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조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개인적인 사용들이 이룬 cycle이 알게 모르게 기여하는 바가 있나보다, 라고 막연하게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2)였다. 도대체 화면보호기로 무슨 투표를 한다는 건가. ㅠ.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내용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뒷문장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번역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막막함과 괴로움 ㅡ.ㅡ 을 나의 번역파트너이자 멘토인 서진과 공유했다. 늘 내 부족한 실력을 메워주던 서진도 이번에는 난색을 표했다. 둘이서 머리를 싸매도 딱히 진전이 없었다. 맥락이 있을텐데, 뭔가 있을텐데, 라는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점점 지쳐가던 우리는 그간 숱한 오탈자와 비문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저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위데포드 지못미.. 그치만 당신이 한 짓도 만만치 않아.. ㅋㅋ)

그런데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여 뭔가를 부지런히 검색하던 이부장님이 얼마 후 자기 노트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우리의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거슨 SETI@home(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home(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은 SETI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분산 컴퓨팅 기술을 활용하여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들을 이용해 외계 지적 생명체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이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1999년 5월 17일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버클리 네트워크 컴퓨팅을 위한 공개 기반(BOINC) 플랫폼에 속해 있다.

SETI의 기본 개념은 거대한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행성의 주파수 대역의 신호를 분석하여 특정한 반복 패턴을 보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전파 신호를 가려내는 것이다. SETI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 원작의 영화 '콘택트' 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SETI의 전신인 오즈마 계획은 1960년대 부터 시작되었지만 50년 가까이 아무런 외계 지성의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외계로부터의 신호는 전파망원경으로 수신한다. 전파망원경이 수신한 전파 신호 속에는 별의 탄생이나 블랙홀에서 나오는 호킹 복사 등 온갖 자연의 전파가 포함돼 있다. 여기서 인공적인 전파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높은 연산 능력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게 된다. SETI@home은 전 세계에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가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슈퍼컴퓨터의 역할을 하여 신호를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세티 프로젝트(Search for Exteraterristrial Intelligence, SETI Project)에 대한 미 의회에서의 결정으로 국가 예산으로의 지원이 중단됨에 따라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위하여 단일 혹은 소수의 대용량 컴퓨터로 하는 분석이 아닌 전 세계에서 유휴중인 컴퓨터 자원을 활용하여 분석을 지속하기 위하여 분산 컴퓨팅(Distributed Computing)의 형태인 "@home(At Home, 집에서)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연결된 개인용 컴퓨터가 있다면 누구나 무료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실행시킴으로써 SETI@home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용자 개인용 컴퓨터의 CPU, 디스크 공간, 네트워크 대역폭의 일부를 사용하여 작업한다.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다른 작업을 하지 않을 때 화면보호기의 형태로 작동하며, 사용자가 자원의 사용 정도를 설정할 수 있다. 또는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하여 화면보호기를 끄고 백그라운드로 작업을 진행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BOINC 기반 프로젝트들>

생물학

  • Cells@Home - 질병의 전이에 대한 연구.
  • 말라리아 통제 — 말라리아의 역학적인 확률론적 분석과 자연에서의 말라리아의 역사연구.
  • POEM@Home - 앤핀선의 도그마를 이용한 단백질 접이 모델.
  • Rosetta@home — 단백질 구조에 대해서 예측하고, 디자인하는 프로젝트.
  • SIMAP — 분산 컴퓨팅을 이용한 연속적인 유사성이 있는 단백질 데이터베이스 구축 프로젝트.
  • TANPAKU — 브라운 이론을 이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 World Commnuity Grid - BOINC를 이용한 여러 생물학 관련(에이즈 치료, 단백질 접힘, 뎅기열 치료)등을 연구하는 프로젝트.

지구 과학 

물리학 & 천문학

수학 [편집]





이 내용을 알게 되자 ‘화면보호기로 어떤 프로젝트를 지지할지 투표한다’는 표현은 더 이상 외계어가 아니었다. 그래, 세상에 이런 게 있었어. ㅠ.ㅠ 우리는 우리의 무식함에 치를 떨면서 폭풍반성을 했다. 맨날 책이나 읽지 이런 건 하나도 모른다며... ㅋ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나름 만족스런 번역을 뽑아낼 수 있었다.


생산도구의 이러한 네트워크적 사회화가 갖는 가장 극적인 함의들 중 일부는 생태·생물권적 관심사인 새로운 지상의 공통재와 관련이 있다. 외계 지적 생명체에 대한 탐사, 지구온난 및 기후변화에 대한 예측, 전염병 통제와 같은 엄청난 계산능력을 필요로 하는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들은, (1)화면보호기 상태에 있는 PC네트워크의 무수히 많은 특이한 기여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아주 큰 규모에서 보면, (2)어떤 연구프로젝트의 화면보호기 쏘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는 것이 곧 그 연구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이르게 된다. 즉 이것은 집단적 지식의 대규모적 재사회화이자 일반지성의 실행인 것이다.


그래도 다듬어야할 부분이 있겠지만, 어쨌든 해피엔딩을 맞았다.

번역은 해당언어사전만으로 불가능하다는, 너무 당연하지만 자주 간과하게 되는 교훈을 되새기며. :P



thanks to 서진

special thanks to 종호 a.k.a. 이부장



:

[발췌]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민음사)

리토르넬로 2010. 10. 26. 00:41

(12) 
아니다! 그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풍경들은 정확하게 똑같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같게 느껴진다는 것은 자신이 그것을 예상 못 했고, 몰랐으며, 게다가 이해도, 생각조차도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16)
마부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건 똑같은 게 아니라는 의미 아닌가.

(26)
진정과 위안이 번져 나갔다. 이곳, 돌로 지은 교회 안에서 농부는 다시 농부가, 지주는 다시 지주가, 미사는 다시 미사가, 돌은 다시 돌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30)
그것은 끝없는 성운 어느 한 귀퉁이에서 일어나는 색다른 공연, 어둠 속에서 괴상한 몸짓과 표정으로 허공을 향해 나부대는 인간들의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우리 존재는 이렇게 무한한 공간에 잠김으로써 뜻밖에도 어떤 구체성을, 생생한 현실감을 얻고 있었다. 인간은 이 우주에 돌이킬 수 없이 던져져서 샅샅이 규명된 어떤 것이었다.

(31)
절대적 어둠 속에 홀로 버티고 있을 때 난데없이 솟아오른 이 관능. 불현듯 기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만약 이 있다면 그건 하늘에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닌 바로 이런 기적이겠구나 싶었다.

(33)
그녀의 등과 뒷목의 선은 여전히 소녀의 것이었다. 내 눈은 그녀의 목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그녀의 목이 조금 전에 보았던 또 다른 목과 아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보였다. 그녀의 목과 또 다른 목이 내 눈앞에 나란히 있었다. 그렇다. 두 개의 목. 이 둘은…….
그러니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녀의 (소녀다운) 목이 마치 그것만 몸에서 빠져나와 조금 전에 본 그 (소년의) 목으로 달려가는 것 같았다. 하나는 끌려가고 다른 하나는 끌어당기는 것처럼. 

(91)
'아직 어린', 너무 가벼운, 무게를 지니지 못한, 그래서 그 부족함과 미완성을 통해 원천적인 힘을 행사하는 이 소년과 함께……. 

(99) 
조금 전 우리가 목격했던 일. 꿈틀거리던 지렁이의 몸통을 번갈아 짓이기던 그 두 개의 천진한 다리. 둘은 잔인한 공범자였다. 그런데 잔인하다고? 그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었던가? 차라리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편이 옳지 않을까. 사람들이 길을 걸어갈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거기 있기 때문에 지렁이를 밟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날마다 얼마나 많은 지렁이를 밟아 으깨는가! 그렇다, 그 둘의 행동은 잔인한 것이 아니라 분별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죽음의 고통을 호기심에 찬 어린아이의 눈으로, 재미있다는 듯, 아무런 가책 없이 응시하고 있었을 뿐.

(100)
우주 공간이 하나이듯 고통도 '하나'다. 고통이란 작은 조각으로 분할할 수 없다.

(102)
'죄악'이라는 이 짧은 단어가 숨기고 있는 희망, 가능성이란 경이로운 것이었다.
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은밀히 저지른 수치스러운 죄악은 그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존재 속으로 깊숙이, 마치 사랑의 행위를 할 때 육체를 통해 상대방의 몸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만큼이나 깊숙이 파고들게 해준다고.

(107)
'사실은'이라니.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이 단어만 있으면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말하게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흐릿하게 지워버리는 이 마술의 단어. 

(111)
'예쁜'……. 가슴 쓰리게도 '예쁜' 그 모습. 그 두 사람은 '예뻤다.'

(118)
내가 생각하기에 그때 그녀의 심리 상태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작품을 안목 있는 비평가에게 선보일 기회를 잡은 시골 화가와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작품이란 그녀 자신, 그녀의 삶이 아닌가.

(119)
… 그는 자신이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고 했다. 예를 들면 쥐었다가 폈다가 끊임없이 비틀고 꼼지락거리던의 손. 나는 그의 손이 지극히 손다워지는 것을, 손 아닌 모든 것을 차츰 지워버리고 오직 손 그 자체가 되는 것을 보았다.

(129)
이렇게 서서히, 얼마간 이야기가 이어진 다음, 그가 말하고 있는 것 뒤편에서 그가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말 없는, 말을 벗어난 진짜 말. 단어들로는 옮길 수 없는 어떤 의미가 실린 그것.

(133)
이 무슨 역설인지! 모두가 그녀 단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는, 그럴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모여 있는 이들 가운데서 유일하게 움직임이 허용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135)
그건 사랑이 아니라, 보다 개인적인 차원의 어떤 감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인정과 확인을 그리스도에게 갈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명민한 의식의 소유자일 뿐 한 인간에 불과한 프레데릭에게서 얻어내려 함으로써 사상의 어떤 놀랄 만한 이단성을 노출했다.

(169)
내게 있어 민족과 그것에 따라붙는 일체의 것들, 낭만주의의 이 부산물들은 결코 마실 수 없는, 날 괴롭히기 위해 조제된 혼합 음료였다.

(170)
대독 저항운동, 전투적……. 이런 단어들이 별안간 매일의 삶보다 훨씬 생생한 진실을 띠고 다가와서 신선한 바람처럼 실내를 한 바퀴 휘감아 돌았다. 

(201)
설마 내가 말하는 게 저 낡은 하느님 아버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바로 자연이라는 오래된 원리 말입니다. 자연이 지금처럼 무언가 예기치 못한 걸 가지고 우리의 옆구리를 치면, 거기에 저항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굽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원하는 걸 내심 포기해서는 안 되지요. 특히 필요한 건 그걸 끝끝내 응시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야 자연도 알 게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우리의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자연은 처음 우리에게 참견할 때는 늘 분명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얼마 지나면 마치 갑자기 흥미를 잃어버린 듯 감시가 느슨해지곤 하지요. 그때가 되면 우리는 자연의 어떤 너그러움을 기대하면서 은근슬쩍 우리 자신의 일로 되돌아오면 됩니다…….

(202) 
그는 나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지칠 줄 모르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259)
그는 생각했다. 자신이 살인자가 되었을 때 헤니아가 자신을 혐오하게 될 거라고 걱정했듯이, 이제 살인자가 된 카롤은 그녀에게 끔찍한 존재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그러나 이건 그가 꽃에 코를 갖다 대고 향기를 음미하는 대신 영혼을 킁킁거리기만 하는 데서 비롯된 착각이었다. 그는 죄악이 추하고 미덕은 아름답다는 말을 과신하고 있었다. 이 범죄가 카롤의 육체를 빌려 행해질 경우 어떤 심미적인 향취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자신이 그 일을 저질렀을 때의 맛과는 다를 거라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다.

(280)
단지 어머니이기만 한, 어머니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 시효 지난 존재는 마찬가지로 시효 지난 과거에 잠겨 허우적대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머니에 대한 경건한 숭배에 취해 멀어져 갔다. 나는 그녀가 우리 일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무엇이기 이전에 우선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녀가 현재 해낼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동안 그녀의 낡은 젖가슴이 춤을 추었다.

(281)
성숙한 인간은 자신이 타인의 마음에 드는지, 자신이 호감을 주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즐거움만을 추구할 뿐이다. 자신이 즐거움을 느끼는가 여부에 따라 어떤 것이 아름답고 어떤 것이 추한지가 결정된다. 

(291)
젊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한한 쾌감이 번져왔다. 왜 아니겠는가? 그들이 떼어놓는 발걸음 아래서 끔찍한 성격의 한 행위가 다른 눈부신, 생기를 불어넣는 어떤 행위로 바뀌고 있는데……. 다만 한 가지 마응에 걸리는 점은, 살금살금 발끝을 세워 다가오고 있는 이 젊음의 종류였다. 이 젊음은 과연 순수한 것인가? 이것은 정말로 신선하고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순진한 젊음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른들을 위한' 젊음이었다. 문밖의 저 소년과 소녀가 이 모험에 가담한 것은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였다. 고분고분한 태도로, 우리의 환심을 사고, 우리와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고 그 젊음을 '향해 뻗어 나간' 나의 성숙은 성숙을 '향해 내밀어진' 그들의 젊음과 시에미안의 몸뚱이 위에서 만나게 되어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 만남은!



:

<연구공간 L> 1주년을 자축하며

사는 얘기 2010. 10. 1. 17:47

노래 한 곡 띄웁니다. 
모두들 수고 많았고, 앞으로 더 수고합시다! 단, 즐겁게! :P







Seasons Of Love from "Rent"



ALL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Moments so dear.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How do you measure, measure a year?

In daylights, in sunsets, in midnights
In cups of coffee
In inches, in miles, in laughter, in strife.

In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How do you measure
A year in the life?

How about love?
How about love?
How about love? Measure in love

Seasons of love. Seasons of love

JOANNE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Journeys to plan.

Five hundred twenty-five thousand
Six hundred minutes
How do you measure the life
Of a woman or a man?

COLLINS
In truths that she learned,
Or in times that he cried.
In bridges he burned,
Or the way that she died.

ALL
It's time now to sing out,
Tho' the story never ends
Let's celebrate
Remember a year in the life of friends
Remember the love!
Remember the love!
Seasons of love!

JOANNE(while ALL sing)
Oh you got to got to 
Remember the love! 
You know that love is a gift from up above 
Share love, give love spread love 
Measure measure your life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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